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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미사일 전투 준비" 동병상련 이웃, 일촉즉발 적국된 사연 [영화로운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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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뉴스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곤 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낯선 땅의 사람들에게 금세 감정 이입이 되죠. 영화를 통해 더이상 ‘먼 나라’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국제 뉴스를 전합니다.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거물급 인사만 도맡는 ‘트리플 A급 경호원’ 마이클(라이언 레이놀즈)은 자존심이 상해 죽을 지경입니다. 얼마 전 자신이 경호를 맡았던 무기상이 살해당해 명성이 땅에 떨어졌거든요. 커리어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중 인터폴(국제형사경찰)인 전 여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초특급 킬러 다리우스(사무엘 L 잭슨)를 보호해달란 요청이었죠.

잠깐, 인터폴이 왜 킬러를 경호하냐고요? ‘글로벌 빌런’을 잡기 위해선 다리우스의 증언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는데…. 할리우드 스타 라이언 레이놀즈의 걸쭉한 입담이 빛나는 코믹 액션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는 여기서부터 흥미를 더해갑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새해가 밝았는데도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여전히 암흑 속에 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최근 이웃 벨라루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한 지 며칠 안 돼 벨라루스군이 “러시아에서 받은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핵탄두 장착 가능) 시스템이 전투 준비태세에 들어갔다”고 밝힌 겁니다. 29일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습을 방어하며 쏜 지대공 미사일이 벨라루스로 넘어가 격추당하는 일까지 일어났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가까운 벨라루스 역시 적국으로 간주해 왔기에 긴장감은 높아져만 가고 있습니다.

영화 얘기를 하다 느닷없이 왜 전쟁 얘기냐고요. 실은 ‘킬러의 보디가드’ 속 빌런이 벨라루스 대통령이거든요. 2017년에 나온 영화 속 대통령 이름은 두코비치(게리 올드만). 실제 어떤 이를 모델로 했을지 따져볼 필요도 없습니다. 현 대통령 루카셴코가 1994년부터 장기 집권하며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고 있거든요. 할리우드 영화의 대담함이랄까요, 이 작품은 그의 이름만 바꿨을 뿐 두코비치가 '벨라루스 대통령'이라고 콕 짚어 말합니다. 그리고 역사ㆍ지정학적으로 매우 가까웠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가 이토록 멀어진 배경에는 바로 이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벨라루스를 찾아 루카셴코 대통령을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19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벨라루스를 찾아 루카셴코 대통령을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함께 키이우(키예프)를 중심으로 동유럽에서 번성했던 동슬라브족의 나라 키이우 루스 공국(882~1240년)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요. 이후에도 두 나라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16~18세기), 러시아 제국(18~19세기) 아래서 ‘2등 시민’으로 핍박당하며 동병상련을 겪게 됩니다. 함께 구소련에 속하기도 했죠.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낀 ‘완충지대(서로 충돌하는 지역 사이에 위치하는 중립지대)’라 갖은 고난을 겪었는데, 특히 20세기엔 두 나라 모두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가장 잔혹하게 수탈당한 ‘블러드 랜드’”(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로 꼽힙니다. 그런데도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죠.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난달 21일 극비리에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고 의회에서 연설을 하며 지원을 이끌어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달 21일 극비리에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고 의회에서 연설을 하며 지원을 이끌어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연합뉴스

강대국들의 치열한 다툼 속에 있던 우크라이나는 18세기 말 완전히 동서로 양분돼 서부는 오스트리아(가톨릭), 동쪽은 러시아 제국(동방정교)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소련에 모두 흡수되기 전까지 정치체제ㆍ문화ㆍ종교가 다른 기간이 100년 넘게 지속한 여파는 컸습니다. 독립 이후에도 서방에 가까운 서쪽과 러시아에 가까운 동쪽으로 나뉘어 내부 분열이 극심했죠.

정부 역시 갈피를 못 잡고 러시아에 밀착했다 서방에 다가갔다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친러시아’ 정권이 들어설 수 없던 상황에서 경제위기가 심해지자 사람들은 점점 서방의 번영을 부러워하게 되는데요. 실정을 거듭하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2013년 유럽연합(EU) 가입을 약속했다 이를 번복하자,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납니다. 다큐멘터리 ‘윈터 온 파이어’를 보면 젊은이들이 이런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죠.

“우크라이나는 유럽 국가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국가다!”

이 구호가 푸틴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요. 위기감을 느낀 러시아는 2014년 크림 반도를 병합했고, 우크라이나의 반러 감정은 더욱 거세집니다.

다큐멘터리 '윈터 온 파이어'.

다큐멘터리 '윈터 온 파이어'.

반면 벨라루스는 달랐습니다. 러시아 제국에 편입된 이후 줄곧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탓에 우크라이나와 같은 내부 분열이 덜하기도 했지만, 독재자 루카셴코가 경제적 이득을 위해 러시아와 밀착하며 약 30년간 비교적 일관된 ‘친러 외교’를 유지했거든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에 복종하는 구도죠.

그런 루카셴코는, 옆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나 대통령을 쫓아내자 불안해집니다. 푸틴에 더 밀착하며 “크림반도는 러시아 것”이라고 지지했죠. 그렇지 않아도 서방 쪽으로 기울며 ‘친러’ 벨라루스와 멀어져가던 우크라이나는 분노합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격이랄까요. 말리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멀어진 건 2020년 8월 벨라루스 대선 때입니다. 루카셴코가 ‘또’ 승리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일자, 벨라루스 정부는 시위대를 탄압했는데요. 이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루카셴코를 비판하며 벨라루스와 모든 교류를 중단했거든요. 거의 단교에 준하는 수준이었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타스=연합뉴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타스=연합뉴스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에서 킬러 다리우스는 사실 대통령 두코비치가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단 증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을 고용하려는 두코비치가 폭압적인 독재자란 걸 알고 ‘손절’하며 증거를 품고 있었던 겁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ㆍ네덜란드 헤이그 소재)에 잡혀 있는 두코비치를 처벌하려면 다리우스의 증언이 필요했기에 인터폴이 보호했던 거죠.

킬러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의 ‘나쁜 놈’이란 설정인데, 실제 루카셴코는 2020년 반정부 시위대를 매우 폭력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수천 명을 체포하고 고문해 국제 인권단체들이 크게 비판했죠. 물론 영화 속 얘기는 현실에선 불가능합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ㆍ이란ㆍ북한 등과 함께 ICC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거든요.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에서 벨라루스 대통령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에서 벨라루스 대통령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

참,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가 다른 길을 걷게 된 데는 ‘땅덩이의 힘’ 차이도 있습니다.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우크라이나(60만km²ㆍ남한의 6배)는 벨라루스(20만km²) 면적의 3배고, 인구(4400만 명)도 약 4.7배 많습니다. 천연자원도 풍부하고 흑해도 끼고 있죠. 그에 비해 벨라루스는 턱없이 적은 인구(930만)에 자원도 부족해요. 무엇보다 해안선을 끼지 않은 내륙국이란 게 한계입니다. 코트라에 따르면 석유화학 분야가 벨라루스 수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데 석유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합니다.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루카셴코 정권이 점점 국민과 괴리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벨라루스인들은 “아무도 러시아를 위해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포린폴리시)는 게 외신의 공통된 분석이거든요. 그러나 루카셴코가 그 민심을 제대로 읽을는지는 알 수 없기에, 지켜보는 마음은 답답해집니다.

아, ‘킬러의 보디가드’ 결말이요? 속 시원한 액션 영화란 점만 알려드릴게요.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용어사전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패트릭 휴즈 감독의 2017년 영화. B급 감성을 자극하는 코믹 액션 영화로 흥행에 성공해 2021년에는 2편도 나왔다.

용어사전영화 '윈터 온 파이어: 우크라이나의 투쟁'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감독이 2015년 내놓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2013년 11월 시작돼 2014년까지 이어진 유로마이단 혁명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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