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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도 아기도 없다" 전장 떠난 남자들, 푸틴의 인구 전쟁 [세계 한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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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러시아에 군인이 없다는 건 남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고로 아기도 없습니다.”(러시아 인구통계학자 알렉세이 락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2월 31일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있는 군 부대 방문 행사 후 TV로 방영되는 연례 신년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2월 31일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있는 군 부대 방문 행사 후 TV로 방영되는 연례 신년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남자들이 대거 전쟁터로 동원되면서 러시아의 출산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인구 감소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이 ‘러시아 해체’를 목표로 삼았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본인이 전쟁을 장기화로 이끌면서 인구 위기를 가중시키고 국가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러 2022 합계출산율 1.45명, 더 떨어질 듯

올 초 러시아 국가통계청 로스스타트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합계출산율은 1.45명이었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합계출산율은 2.05~2.1명 사이가 돼야 한다. 러시아에선 지난해 130만6000명이 출생했는데,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그런데 러시아의 이 기록은 올해 다시 경신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9월 군 동원령으로 소집된 30만명의 남성이 1년 동안 전쟁터에 머문다면 2만5000명의 출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모스크바 인구통계연구소가 추산했다.

올해도 전쟁이 계속된다면 러시아의 올해 출생아 수는 120만명 미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스크바 가이다르 경제정책연구소의 인구학 전문가인 이고르 예프레모프는 “이 수치는 러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낮은 출생아 수준”이라고 했다. 합계출산율은 1.2명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는 러시아에서 1999~2000년에 나타났던 낮은 수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병력 손실에 이민 여파도…“인적자본 전쟁”

러시아의 출산율은 장기적으로 계속 나빠질 수 있다. 전쟁터에서 희생되는 남자가 많을수록 아기 출생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서방 전문가들이 추산하는 러시아군 사상자는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전선에서 러시아가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육군 전력의 97%를 쏟아붓는 등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는 탓이 크다. 병력 손실이 심각해 푸틴 대통령이 또 군 동원령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락샤는 “군인이 없다는 것은 남자가 없다는 뜻이다. 남자가 없으면 성관계도 없고, 아기도 없다”면서 “출생아 수가 감소하는 아주 간단한 논리”라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 세번째)이 지난해 10월 20일 러시아군 훈련소를 방문해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 세번째)이 지난해 10월 20일 러시아군 훈련소를 방문해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쟁 이민으로 인한 인구 유출도 심각하다. 지난해 2월 개전 이후 약 110만명 이상이 러시아를 떠나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아르메니아·조지아·튀르키예·핀란드 등 인근 국가로 떠났다.

개전 초기에는 서방 제재에 일자리 타격을 입은 엘리트 중산층이, 지난해 9월 이후에는 동원령을 피해 젊은 남자들이 러시아를 빠져나갔다. 전쟁으로 미래 세대가 살기 힘들 것이라고 여긴 젊은 엄마들은 수천만 원을 들여 남미 아르헨티나로 원정출산을 떠나 그대로 눌러앉았다.

이같은 전쟁 사상자와 이민자로 인해 최악의 경우 러시아 인구는 매년 100만명씩 감소할 수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세계 인구 9위(1억4600만명) 러시아가 21세기 말에는 약 7000만명으로 반토막 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은 표면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지만, 본질에서는 인적 자본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이 지난해 12월 2일 러시아 중부 튜멘의 한 기차역에서 기차에 오르기 전, 한 여성을 포옹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군 동원령에 의해 소집된 병력이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이 지난해 12월 2일 러시아 중부 튜멘의 한 기차역에서 기차에 오르기 전, 한 여성을 포옹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군 동원령에 의해 소집된 병력이다. AP=연합뉴스

단순히 인구 감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도 멈출 가능성이 높다. 전쟁으로 외국 기업이 철수하고 인터넷이 통제되면서 정보기술(IT) 및 소프트웨어 분야 등에 종사하는 고급 인재 수만 명이 러시아를 떠났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데 필요한 신기술을 조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락샤는 “러시아는 수년에 걸쳐 계속 나이 들고 경제 성장이 멈추면서 10~20년 전처럼 살게 될 것이다. 세계와 격차는 점점 커질 것”이라면서 “이 전쟁이 핵전쟁으로 끝나지 않더라도 러시아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전망했다.

푸틴 출산율에 사활…“종전이 해답”

푸틴 대통령도 현 상황을 직시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내각에 2023년 말까지 출산율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지난해 8월에는 옛소련 시절 제도였던 모성영웅 훈장을 부활시킨 바 있다. 4~10명 이상을 낳은 여성에게 훈장과 최대 2000만원이 넘는 상금을 준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것도 인구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최대 30만명으로 추정되며, 러시아 가정에 입양되거나 캠프에 억류돼 우크라이나인으로서 정체성을 말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러시아의 출산율 감소와 인구 위기는 구조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콜레스니코프 연구원은 “출산율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젊은 남성들이 군대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누리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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