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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 바지 없던 천생 여자…'反푸틴' 여전사로 거듭난 칼라스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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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철의 여인’ 카야 칼라스(46) 에스토니아 총리가 이끄는 개혁당이 지난 5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북유럽 발트 3국의 소국(小國)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왔던 에스토니아가 러시아 제재에 더욱 적극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난해 3월 8일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난해 3월 8일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개혁당 승리…우크라 지원 계속

지난 6일 로이터·AP통신에 따르면 개표 결과 중도 우파 개혁당이 31.24%로 제1당을 수성했다. 바람이 거센 듯했던 극우 국민보수당(EKRE)은 16.05%에 그쳤다. 이로써 개혁당은 이전보다 3석이 늘어난 37석을 확보했지만, EKRE는 2석이 감소한 17석에 머물렀다.

중도 좌파인 중앙당은 15.28%의 득표율로 16석을 차지했다. 신생 정당 에스토니아200이 14석, 사회민주당(SED)이 9석, 조국당이 8석 등을 각각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토니아 의회는 총 101석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선거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에스토니아 민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졌다. 칼라스 총리는 지난 1년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며 우크라이나를 강력히 지지하는 지도자로 앞장섰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난 5일 수도 탈린에서 총선을 마무리한 후 여당 개혁당원들과 엄지를 들고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난 5일 수도 탈린에서 총선을 마무리한 후 여당 개혁당원들과 엄지를 들고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런데 전쟁 여파로 인플레이션이 18.6%에 달해 생활비 문제가 커졌고, 이를 파고든 EKRE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난민 수용 중단을 내세우며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EKRE가 승리하면 서방의 단일대오에 균열이 생기고 반(反) 푸틴 선봉장이 사라지면서 우크라이나 지원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개혁당이 승리하면서 칼라스 총리는 날개를 달았다. 그는 “솔직히 이 정도로 이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우리에게 좋은 정부를 구성하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됐고, 이 힘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EKRE는 배제하고 중앙당·SED 등과 연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칼라스 총리는 이날도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공격적인 이웃(러시아)은 사라지지 않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안보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 후손, 자유민주주의 꿈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에스토니아 국토 크기(4만5228㎢)는 한반도(22만748㎢)의 5분의 1로, 인구는 133만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400배가 넘는 크기(1710만㎢)의 러시아와 오랫동안 대적했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와 약 300㎞에 이르는 국경을 접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최근 300년 역사는 제정 러시아와 옛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옛소련이 지배했던 1940~91년까지 점령군에게 약 7만5000명이 살해·체포·추방됐다. 반(反)소련·러시아 감정이 강할 수밖에 없다.

독립투사의 피가 흐르는 칼라스 총리는 더욱 그렇다. 칼라스 총리의 조부는 에스토니아 독립전쟁(1918~1920년) 때 소련에 맞서 싸운 지도자 중 한 명이다.

1940년대 에스토니아인들은 시베리아로 대거 추방당했는데, 생후 6개월이었던 칼라스 총리 모친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외할머니와 엄마는 3주 동안 소달구지를 타고 갔다”면서 “가는 도중 우유를 주고 기저귀를 말려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엄마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왼쪽)와 그의 아버지인 시임 칼라스 전 총리. 사진 트위터 캡처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왼쪽)와 그의 아버지인 시임 칼라스 전 총리. 사진 트위터 캡처

그의 아버지 시임 칼라스는 1987년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1991년 소련 붕괴 후 에스토니아 중앙은행 총재로 조국에 자본주의가 안착하는 데 공헌했다. 이후 개혁당을 창당했고 2002~2003년에는 에스토니아 총리를 지냈다.

1977년 수도 탈린에서 태어난 칼라스 총리는 14세까지 구소련 체제에서 성장했지만, 조부모와 부모가 받은 박해를 접하며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꿈꿨다.

변호사가 된 그는 2014~2018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이 돼 유럽연합(EU) 단일 디지털 시장, 범유럽 와이파이 등 디지털 정책을 추진했다. 에너지 독립에도 관심이 컸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에 “정치적으로 부풀려진 가스 가격을 보상하라”고 하는 등 강경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2018년 개혁당 대표가 되자 아버지 후광 효과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그는 2021년 에스토니아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천생 여자→재블린 멘 여전사 변신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난달 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에 코트를 벗고 있다. AP=연합뉴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난달 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에 코트를 벗고 있다. AP=연합뉴스

날씬한 몸매에 금발 머리칼을 휘날리는 칼라스 총리는 옷장에 바지가 거의 없는 ‘천생 여자’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여전사로 거듭났다. 개전 초기 양국의 평화협상 중재에 매달리는 일부 서방 지도자를 향해 “푸틴에게 전화하지 마라. 그가 고립돼 있다는 메시지를 정확히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강성 지도자를 자처했다.

에스토니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규모는 3억7000만 유로(약 5110억 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1.07%)로는 최대 규모다. 인도적 지원과 재건 부문에도 2910만 유로(약 402억 원)를 제공했고, 4만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였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난해 9월 28일 자국의 예비군 훈련 현장을 방문해 재블린을 직접 어깨에 견착하고 발사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에스토니아 국방부 영상 캡처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난해 9월 28일 자국의 예비군 훈련 현장을 방문해 재블린을 직접 어깨에 견착하고 발사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에스토니아 국방부 영상 캡처

칼라스 총리는 “조국의 미래가 우크라이나처럼 될 수 있다”면서 에스토니아도 무장시키고 있다. 올해 국방예산을 전년보다 42%나 늘리기로 했다.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목표인 2%를 넘어 올해 2.8%, 내년엔 3.2%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엔 미국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을 6대 추가 주문했다.

독일 슈피겔은 “이제 칼라스 총리는 세계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서면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칼라스 총리의 정적은 그를 ‘전쟁광’이라고 비꼰다. 칼라스 총리는 ‘전차 킬러’ 재블린을 어깨에 멘 채 “에스토니아가 51년 동안 소련에 점령당했던 때를 기억하라. 우리는 자유를 그리워했다”고 외치며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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