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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국가가 환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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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희귀질환이라고 불리는 병들이 있다. 발생 빈도가 매우 낮고, 잘 알려지지 않은 병들이다. 대부분 예후가 불안정하며 치료법도 한정돼 있다. 수술법이 개발돼 있더라도 수술을 위한 의료기기의 국내 도입도 힘들다. 높은 가격과 복잡한 절차 때문이다. 이는 결국 환자의 눈물로 귀결된다.

지금은 국가가 이 눈물을 직접 닦아주고 있다. 정식 허가가 어려운 의료기기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이 수입·공급한다. 응급상황에도, 야간에도 달려온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협의해 보험 급여도 제공해 준다. 국가가 환자 생명을 직접 지키고 있다.

대동맥이 늘어나거나 찢어지며 사망하는 병이 있다. 드문 병이다. 특히 어깨와 머리로 넘어가는 대동맥 치료는 매우 어렵다. 몇 년 전 이 질환의 새로운 치료법에 관한 희망적 결과가 해외에서 소개돼 국내 환자들도 간절히 원했지만, 새로운 의료기기의 도입은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여러 사람의 노력을 통해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로 지정돼 공급되기 시작했다.

기적이 시작됐다. 2년 만에 200명 넘는 사람이 희소·긴급 의료기기를 공급받아 치료받고 생존할 수 있었다. 국내 축적된 기록들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희귀질환의 치료 표준화를 위해 국내 결과에 대한 공동연구 제안도 들어오고 있다. 이 질환 치료의 근거가 국내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립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가 정식 수입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증례 수를 갖춘 임상시험자료가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국내의 실사용 데이터를 주목하지만, 국내에서 이 자료를 허가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렵다. 엄격한 국내 규정이 사전에 통제된 임상시험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는 증례 수를 갖추는 것부터 요원하다.

정부의 유연성과 우리의 눈부신 의료기술이 결합한 희귀질환 임상자료를 허가 자료로 인정하면 안 될까? 국내에서 200차례 넘게 환자의 눈물을 닦아준 의료기기에 대해 우리가 의료기기의 안전성을 선언하면 안 될까? 우리가 희귀질환 치료에 대한 국제 표준을 만들어 놓고 그 의료기기를 국내에서 사용하지 못한다면 비극적인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러던 중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기기 실사용 데이터를 평가해 임상적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혁신 과제를 발표했다. 실제 의료기기를 사용한 데이터로 희소·긴급 의료기기도 허가받을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반길만한 일이다. 국가가 환자들의 눈물을 더 세심히 살피고 닦아줄 수 있도록, 하루빨리 정책이 도입되길 바란다.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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