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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노사관계와 죄수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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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임이숙 한양대ERICA 경영학과 교수

임이숙 한양대ERICA 경영학과 교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게임이론을 거론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개념이다. 공범으로 의심되는 두 용의자가 각자 격리된 상태에서 심문을 받는다. 용의자에게는 자백하거나 침묵하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혼자 자백하면 자신은 석방되고 상대만 징역 10년, 둘 다 자백하면 각자 5년, 모두 묵비권을 행사하면 각자 1년형을 산다고 가정하자. 용의자들은 결국 서로를 배신하고 둘 다 자백하게 된다는 게 이 딜레마의 결론이다. 서로를 믿고 협력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됨에도 자신의 이익만 극대화하는 선택을 해 결국 모두에게 불리해진다.

우리는 죄수의 딜레마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노사관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전통적으로 노동조합과 회사는 각각 강경 대응을 선택하고, 극심한 충돌로 양측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상황으로 가는 경우가 잦았다. 이를 극복하고 상생(win-win)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죄수의 딜레마에서 둘 다 손해 보는 선택을 하는 구조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두 용의자가 서로 논의할 수 없고,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선택이 일회성이라는 점이다. 두 사람이 한 방에서 심문을 받는다거나, 상대가 자신에게 불리한 자백을 하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거나, 게임의 상황이 반복되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협상을 반복하는 노사관계는 다행히도 일회성이 아니다.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상호관계를 이어가느냐에 따라 협력이 가능하다.

필자가 얼마 전 사례 연구를 진행했던 SK이노베이션은 협력적 노사관계의 좋은 예다.

이 회사도 과거 노사분규를 경험했다. 그러나 소모적인 분규가 양측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2017년 임금인상을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하기로 약속하고, 상시 소통 채널도 마련하는 등 협력적인 노사관계로 변모했다. 노사는 6년째 약속을 지키며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미국의 애프톤 케미컬(Afton Chemical)사 역시 경영진과 노조의 공동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시간제 근로자부터 최고 경영진까지 함께하는 심화 토론, 신뢰 구축을 통해 산업재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있다.

급격히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혁신 없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협력적 노사관계는 기업 혁신의 근간이다. 경영진의 리더십과 구성원의 변화가 결합해야만 혁신이 실현될 수 있어서다.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시기, 노사관계 역시 소모적인 대립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멀리 내다보고 서로 협력해야 위기의 파고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임이숙 한양대ERICA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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