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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車 '있는' 거리 됐다…연세로 상인은 반색, 학생들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요일인 지난 9일 서대문구 연세로 홍익문고 앞. 오후 9시 50분가 되자 야광 조끼를 입은 모범운전자연합회 서대문지회 소속 A씨(65)가 차도를 가로막고 있던 빨간 고깔 6개를 치우기 시작했다. A씨는 ‘차 없는 거리’ 안내 표지판도 세로로 돌려세워 길을 텄다. 오후 10시가 되자 연세로를 비껴 신촌로로 우회하던 ‘서대문03’ 마을 버스가 연세로로 들어섰다.

‘차 없는 거리’ 마지막 날…8년 만에 역할 다한 고깔 

9일 오후 4시(위)와 오후 10시(아래)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초입의 모습. 연세로는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후 10시까지 '차 없는 거리'로 운영돼왔지만 이날 오후 10시를 기점으로 해제됐다. 최서인 기자

9일 오후 4시(위)와 오후 10시(아래)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초입의 모습. 연세로는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후 10시까지 '차 없는 거리'로 운영돼왔지만 이날 오후 10시를 기점으로 해제됐다. 최서인 기자

 연대 정문 앞에서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이르는 550m 연세로의 ‘차 없는 거리’ 실험은 만 7년 10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한때 상습 정체구간이었으나 지난 2014년 1월부터 주중에는 ‘대중교통 전용지구’로, 주말에는 버스를 포함한 모든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차 없는 거리’로 운영돼왔다.

 지난 6·1 지방선거 당시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상권 회복을 위해 연세로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하겠다고 공약했고 지난 7월부터 ‘차 없는 거리’ 폐지를 추진했다. 택시 등 일반 차량이 오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도 서울시에 신청해 놓은 상태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차 없는 거리'가 해제된 9일 오후 10시, 모범운전자회 서대문지회 A(65)씨가 연세로 교통 통제에 사용했던 고깔을 한쪽으로 치우고 있다. 최서인 기자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차 없는 거리'가 해제된 9일 오후 10시, 모범운전자회 서대문지회 A(65)씨가 연세로 교통 통제에 사용했던 고깔을 한쪽으로 치우고 있다. 최서인 기자

 지난 1월부터 금요일 오후 2시면 고깔과 안내판으로 연세로 찻길을 막고 일요일 밤 다시 길을 텄던 모범운전자회 회원들의 임무도 이날로써 끝났다. 이들은 2인 1조로 번갈아 가며 월 2~3회씩 시간 맞춰 연세로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A씨는 고깔을 옮기며 “오늘도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중간에 나왔다. 주말 황금 시간을 포기하고 10개월 넘게 해왔던 일이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며“통행 재개가 신촌 상권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통행량 늘고 상권 살아” vs “복잡해지고 문화 훼손”

 그간 신촌 상인들은 접근성 개선과 상권 활성화를 이유로 차 없는 거리 폐지를 지지해 왔다. 지난 8월 서대문구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상인 258명 중 67.1%가 차량 통행 허용에 찬성했다. 지난 8월 5일에는 신촌 상인 1984명이 연세로 차량 통행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구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8년간 운영된 ‘차 없는 거리’ 정책이 오히려 상권을 위축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스타광장에서 열린 2022 신촌미니문화콘서트 '다시, 봄'에서 관객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스타광장에서 열린 2022 신촌미니문화콘서트 '다시, 봄'에서 관객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차 있는 거리’ 재개 첫날 연세로 상인들은 반색했다. 신촌에서 20여년간 노래방을 운영해온 김모(66)씨는 “애초에 2014년부터 차 없는 거리에 반대했었다. 차도 택시도 못 다니니 구매력 있는 손님은 홍대로 빠져나가고 신촌 상권은 죽어갔다”며 “지금이라도 바로잡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25년간 조개구이 가게를 운영해 온 양모(52)씨는 “연세로 페스티벌 방문객들도 인근 상권으로 흡수되기보다는 구경만 하고 빠져나갔다”며 “잘 하는 정책이라 본다”고 말했다.

 반면 거리 공연 등 행사가 사라지면서 신촌의 대학가 문화가 훼손될 걸 우려하는 상인들도 있다. 개업한 지 약 6개월된 한 카페 매니저 이모(24)씨는 “신촌은 대중교통이 좋아서 차를 가져오는 사람도 별로 없다”며 “차로가 생기면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만들어 놓은 신촌 대학가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이들이 오히려 줄어들지 않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통학길 사고 위험·거리 문화 축소 우려도

 인근 대학 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연세대·서강대·이화여대 총학생회와 비상대책위원회로 구성된 ‘신촌지역 대학생 공동행동’은 지난달 3일 기자회견을 열고 교통체증과 사고 위험, 대학생 문화 중심지로서의 정체성 소실이 우려된다며 폐지를 규탄했다. 각 학교 학생회가 재학생·졸업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세대생 82.6%, 서강대생 89%, 이화여대생 73.4%가 차량 통행 재개에 반대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차량 통행량을 늘려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키고, 시민의 보행권을 침해한다”며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를 규탄했다.

 연세대 대학원생 이모(25)씨는 “신촌 인근에는 마땅한 주차공간도 없다”며 “신촌 상권에 실질적 이익이 되기보다는 출퇴근 시간 혼란만 더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말이면 연세로에서 열리던 플리마켓이나 대학생 동아리 공연도 보기 어려워질 것 같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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