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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시장 위축에 돈줄 말라…금리 뛰어도 은행 문 두드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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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제조업체인 A사 사장인 박모(54)씨는 요즘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이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2년 이상 빚으로 버텨왔는데 더는 이자도 낼 수 없는 상황이 돼서다. 올해 들어 금리는 물론이고 환율까지 치솟은 영향이다.

그는 공장 등을 담보로 시중은행에서만 30억원을 대출받았다. 지난해만 해도 한 달 이자가 1000만원 선이었지만, 올해 들어 금리가 1.5%포인트 오르면서 한 달 이자만 400만원 가까이 더 늘었다. 여기에 제2금융권 신용대출 등을 포함하면 한 달 이자만 2000만원 가까이 된다.

박씨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핵심 부품을 들여와야 완성품을 만들어서 파는데 원화 가치가 바닥을 치면서 수익은 감소하고 대출금리 인상으로 지출은 더 늘어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자 부담이 딱 두배 늘었는데 그나마 이것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은행 담당자에게 사정해서 감액 없이 대출 연장했다”며 “요즘처럼 대기업이 은행 대출 쪽으로 몰리면 나 같은 중소기업은 찬밥이 된다“고 말했다.

은행 문을 두드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대출금리도 뛰고 있지만, 기업의 주요 자금 조달처였던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며 기업의 '돈줄'이 말라서다. 은행 대출 외에 마땅히 자금을 조달할 곳이 없다 보니 5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은 이미 100조원을 넘어섰다.

5대 은행 대기업 대출 증가액

5대 은행 대기업 대출 증가액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3438억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낮다. 지난 1월(8조7709억원)보다 3조원 넘게 줄며 39% 감소했다. 1년 전보다도 37% 줄었다. 회사채는 기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기준금리 인상 속 은행 등의 예‧적금 금리가 함께 오르는 상황에서 회사채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는 ‘특판상품’ 수준인 연 4%대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19개 은행이 내놓은 1년 만기 정기예금 상품 중 금리가 연 4% 이상이 총 14개(11개 은행)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면 예금금리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달 비용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난해 2분기 회사채 금리(AA-, 3년물)는 연 1.93%로 기업대출 금리(연 2.69%)보다 낮았지만, 올해 2분기에는 회사채 금리(연 3.87%)가 대출 금리(연 3.63%)보다 높아졌다.

회사채 발행을 통한 조달 부담이 커지고 시장도 얼어붙자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은 최근 한 달 새 7조원 넘게 늘었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100조4823억원으로, 전달보다 3조7000억원(3.95%) 늘었다. 중소기업의 상황도 비슷하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94조4000억원으로, 전달보다 3조8000억원(0.6%) 증가했다.

채권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은 여의치 않지만, 시중은행이 기업대출에 나설 여력은 있다. 금리 인상, 주택 가격 하락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가계 대출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95조원으로, 전달보다 1조4000억원 줄었다.

게다가 은행으로 몰려드는 자금은 늘고 있다. 지난달 정기 예금 잔액은 760조5044억원을 기록했다. 전달(729조8206억원)보다 30조6838억원 늘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올해 들어 가계대출이 꾸준히 줄고 예‧적금은 늘고 있어 상대적으로 기업대출 쪽 자금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업의 이자 부담이다. 운 좋게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 조달에 성공해도 기업 입장에선 높은 금리 부담을 안아야 한다. 최근 한국전력(신용등급 AAA)이 3800억 규모의 회사채를 5%가 넘는 금리로 발행했다. 이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10%가 넘는 금리(BBB-)로 회사채를 발행해야 한다.

대출에 의존해도 부담은 만만치 않다. 기업대출 금리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서다. KB국민은행(4.45%), 하나은행(4.47%), NH농협(4.26%) 등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평균 금리는 4%대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평균 대출금리(4.02~5.43%)는 평균을 웃돈다. 개인사업자 평균 대출 금리도 3.59~5.09%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제조기업(307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1.2%가 “고금리로 실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주요 시중은행이 향후 금융환경 악화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금리를 적극적으로 인상하며 비은행 예금기관의 유동성을 악화할 수 있는 만큼 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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