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책임자로 첫 방미 조경식 농림수산(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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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UR협상 억지도 좀 써야죠/15개 품목 개방유예 관철 최선/“아예 깨자” 뜻 알지만 피해 더 커
정부각료 가운데 요즈음 가장 분주한 사람중 하나가 조경식 농림수산부 장관이다.
스스로도 관료생활 20여 년 동안 지금처럼 어렵고 바쁜 때가 없다고 말하지만 소위 『동학혁명 이래 한국농업의 최대위기』라는 말처럼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상,진통 속의 추곡수매가 결정 등 안팎의 난제가 취임한 지 한달반 동안 그에게 밀려들고 있다.
조 장관은 최대 경제현안인 UR협상의 정지작업을 위해 미국 워싱턴과 제네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본부를 방문하고 지난 3일 돌아왔다.
­지금까지 농림수산부 장관 중 미국을 방문한 사람은 아마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 봐야 결코 득될 것이 없고 특히 농산물개방이 양국간 통상현안으로 등장한 뒤는 이러한 분위기가 더 높았는데 어떻게 미국행을 결심했습니까.
○우리 농촌현실 전달
▲워싱턴 특파원들을 만났더니 농담이겠지만 「단군 이래 처음」으로 농림수산부 장관이 왔다고 말하더군요. 미국 언론들도 좀처럼 안 나타나던 한국의 농림수산부 장관이 나타나니 관심을 갖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제 생각으로는 가만히 앉아 있느니 한국농업의 어려움을 직접 만나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그렇다면 당연히 농산물 교역에서도 최대 교역시장인 미국을 우선 찾는 게 순서라고 봐서 갔던 것입니다.
­갔다 와 보니 과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까. 성과라며 무엇이 있습니까.
▲무엇을 얻고,그 대가로 무엇을 주기 위해 갔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방문 기간중 만났던 야이터 미 농무장관,칼라 힐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물론 던켈 GATT 사무총장 등 모두 한국이 쌀 등 15개 품목을 NTC(보조금 감축 및 수입개방 유예) 품목으로 제시한 데 대해 한국만 예외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회담 분위기는 대부분 호의적이었고,그 속에서 한국 농업의 어려운 현실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성과라면 성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현지에 가 보니 UR협상 진행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연내 타결이 어렵다는 분석들도 많은데….
▲아직 협상이 진행중인데 앞서 예단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로서도 15개 NTC 품목 중 몇 개가 받아들여질지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고,문제는 농산물 수출국과 수입국의 견해 차가 현격해 NTC에 대한 해석만 해도 우리는 예외 인정 필요를 강조하지만 케언즈그룹 등 수출국은 절대불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로선 대안도 없고 이들 품목에 대해선 개방불허의 입장을 강력히 밀고 나갈 계획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입장만이 잘 받아들여지겠습니까. 오히려 항간의 소문대로 국내용으로 너무 많은 개방불허 품목을 내놓았다가 실익도 없이 협상만 그르치게 되는 것은 아닙니까.
▲사실 NTC 품목을 내는 것은 우리 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은 이미 쌀 등 9개 품목을 일찌감치 제시했고 심지어 농산물 수출국인 캐나다도 닭고기ㆍ유제품 등 4개 품목을 오퍼 리스트로 제출했습니다.
따라서 이들 국가와 협조를 원만히 한다면 NTC 인정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만 무리랄 것도 없고…. 또 다소는 무리고 억지같고,협상을 깨려고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제 입장으로서는 우리 농업을 먼저 생각해야 하며 정부 전체의 견해도 같다고 봅니다.
○EC 등과 공동대처
­같은 농산물 중에서도 농민들은 주곡인 쌀에 관심이 높은데,어떻게 쌀만은 건질 수 있겠습니까.
▲이미 여러 차례 밝혔지만 쌀은 개방대상에서 제외하고 최소한의 시장접근도 허용치 않겠다는 게 정부의 분명한 방침입니다.
일부 신문을 보니까 요즈음 이 때문인지 정부가 『쌀만은 지키겠다』는 식으로 신문보도가 나가던데,정부의 입장은 『쌀은 분명히 안 되고 나머지 품목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우리 입장만 고집할 수 없어 고추ㆍ참깨 등은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시장접근(Minimum Access)을 허용할 생각이며 이 점은 이번 방문에서도 상대방에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고추ㆍ참깨 등은 NTC 품목에 구태여 포함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닙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시장개방과 시장접근은 어디까지나 달라 우리 생각은 이들 품목이라도 국내작황이나 수요를 보아가면서 그때그때 쿼타형식으로 수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최근 유럽공동체(EC) 나라들이 10년간 농업보조금 30% 감축안을 만들어 냄으로써 UR농산물 협상이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일본ㆍEC가 협상에 강경한 입장이지만 EC만 해도 국내보조금보다 수출보조금 삭감에 더 민감해 하는 등 우리와 차이는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ㆍEC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물론 일본ㆍEC가 농업의 발전 정도나 성격에 있어 우리와 차는 큽니다. 그러나 이번 EC 안을 보면 국내보조금 30% 감축 등에서 우리와 제안이 같습니다. 따라서 각 국들의 의견 속에 이같이 우리와 공통분모를 찾아 대처하면 협상에서 성과를 얻어낼 가능성은 없는 게 아닙니다.
○농업재원 확보노력
­국내에서는 일부 지식인까지 포함해 UR협상으로 농촌에 위기가 닥칠 바에야 아예 협상이 깨지든지,GATT에서 탈퇴하는 게 낫다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주무부처 장으로서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농민 당사자는 물론 이번 협상결과가 가져다 줄 어려운 중장기 농업구조 조정과정 등을 고려하면 그런 분들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살고 있던 세계 12대 교역국입니다. GATT 탈퇴에서 생길 그동안의 혜택 박탈을 생각한다면 결코 그런 일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또 농업만 떼어놓고 생각해도 이번 UR협상은 타결돼야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는 이미 지난해 GATT BOP(국제수지위원회)를 졸업,오는 97년까지 4백6개 농산물 수입제한품목을 개방토록 되었습니다.
만약 이번 협상이 깨지면 미국에서 쌍무적 압력은 더 드세질 것이고,또 아무런 대안없이 개방하느니 우리는 현재 GATT에서 논의되는 대로 10년 이상 유예기간을 갖고 관세화로 가는 것이 유리합니다.
­지난 6일 이경해 농어촌후계자협의회 회장이 UR협상에 항의,할복자살을 기도했습니다. 농민들의 불만이 이처럼 높아지고 있는데 앞으로 농정을 어떻게 이끌어갈 계획입니까.
▲우리 농촌은 UR와 관계없이 1년에 40만명식 이농하는 격변기에 놓여있습니다. 현재의 농업구조에서 탈바꿈,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술을 혁신하고 농업생산기반을 확충해야 하는데 경지정리ㆍ기계화ㆍ수리사업 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한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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