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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시대…기업은 채권→대출, 가계는 주식→예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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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앙은행의 가파른 긴축에 돈의 이동도 빨라지고 있다. 시장금리가 뛰며 가계의 여유 자금은 주식에서 은행 예·적금으로 몰렸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원자재 값 급등으로 늘어난 비용을 메우기 위해 기업이 은행에서 빌린 돈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분기 자금순환’(잠정) 통계에 따르면 비금융법인(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46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19조40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기업이 예금과 주식 등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은 59조6000억원에서 48조5000억원으로 줄어든 반면, 대출이나 채권발행 등으로 빌린 돈(자금 조달)이 79조원에서 95조4000억원으로 늘어난 결과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혜정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기업의) 운전자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순조달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자금순환은 각 경제 주체 간의 금융 거래(자금흐름)를 파악한 것이다. 통상 가계는 저축과 투자로 다른 분야에 자금을 공급하는 순자금운용 부분으로, 기업은 자금을 공급받는 순자금조달 부분으로 파악한다.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은 회사채 발행에서 은행 대출로 이동했다. 기업이 올해 2분기 은행 등 금융기관 대출로 조달한 금액은 56조4000억원으로 1년 전(49조3000억원)보다 7조1000억원 늘었다. 특히 만기 1년 이하의 단기대출로 조달한 액수는 26조6000억원으로 1년 전(2조3000억원)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문 팀장은 “장기 대출보다 단기 대출 금리가 유리해 기업이 단기 대출 위주로 대출을 늘린 듯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는 8조3000억원으로 1년 전(6조9000억원)보다 1조4000억원 늘었다. 다만 한국전력공사(한전) 등 공기업의 채권 발행이 9조1000억원을 차지했다. 민간기업의 채권 발행(-1000억원)은 오히려 감소했다.

기업이 채권 발행보다 은행 대출로 움직인 건 채권 발행에 따른 조달비용이 많이 늘어난 결과다. 지난해 2분기에 회사채 금리(AA-, 3년물)가 연 1.93%로 기업대출 금리(연 2.69%)보다 낮았는데, 올해 2분기에는 회사채 금리(연 3.87%)가 대출 금리(연 3.63%)보다 높아졌다.

5대 은행 대기업 대출 증가액

5대 은행 대기업 대출 증가액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긴축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기업 성과가 나빠지면서 투자 위험도가 높아지는 등 기업의 차입여건이 개선되긴 힘들어 보인다”며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은 투자를 줄이거나 인건비 등 다른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리 상승과 안전자산 선호 등으로 가계 운용자산에선 주식에서 예·적금 등으로의 ‘역(逆) 머니무브’가 확연했다. 가계 운용자산 중 장기 저축성 예금은 2분기에만 17조5000억원 불었다. 1년 전 증가 폭(1000억원)보다 급증했다. 같은 기간 채권 투자액도 5000억원 늘며 1년 전(-5조4000억원) 증가액보다 컸다.

반면 주식 투자액은 24조8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쳐 1년 전(31조9000억원)보다 증가 폭이 둔화했다. 올해 2분기 가계 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은 18.5%로 전 분기(20.1%)보다 1.6%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예금 비중은 43.1%로 전 분기(41.8%)보다 2.3%포인트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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