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에 대한 병합 조약에 서명했다.
타스통신과 가디언·CNN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9시) 크렘린궁에서 열린 조약 체결식에서 “러시아에 새로운 4개의 지역이 생겼다”고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병합을 공식 선언했다. 이어 “러시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새 영토를 지킬 것이며, 핵무기 사용 선례를 남긴 것은 미국”이라며 핵 사용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조약 체결식에는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의 친(親)러 행정부 수장들도 참석했다.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핵 위협을 경고하는 길고 전투적이며 분노에 가득찬 연설로 행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과거 미국은 일본에 두 차례 핵무기를 사용한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하고 "서방은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1일 러시아에 첫 군 동원령을 발령할 때도 "서방이 러시아를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모든 수단을 쓸 수 있으며 이는 엄포가 아니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러시아에 통합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인의 뜻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병합은) 러시아 연방과 공통의 역사를 공유한 '수백만의 선택'에 따른 결정"이라며 "역사적 뿌리로 돌아가려는 (우크라이나인의) 의지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를 향해서는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항상 (협상에) 개방적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면서 "(우크라이나는) 2014년 시작한 모든 군사행동과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에 대해 "언제나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무릎꿇리려는 존재"라면서 "서방은 탐욕스럽고 러시아를 식민지로 만들고자 한다"고 비난했다. 최근 발생한 발트해 해저의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 1·2 파손 및 가스 누출 사고와 관련해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 직후,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병합하는 조약에 서명했다. 점령지의 면적은 약 9만㎢로,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15% 정도이자 포르투갈 전체와 맞먹는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강제 점령 지역이다.
이들 4개 지역은 지난 23~27일 닷새간 주민투표를 통해 지역별 87~99%의 찬성률로 러시아와의 병합을 결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주민투표를 통한 점령지의 병합 요청에 대해 "유엔 헌장에 보장된 자결권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주민투표를 '가짜 투표'로 규정하고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추진하고 있다.
최종 병합까지는 상·하원 비준 동의를 거쳐 푸틴 대통령 최종 서명 등 법적 절차가 남았다.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은 다음 달 4일 공식적인 영토 병합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