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행정」이 부른 과격시위/이규연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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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방사성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에 반대하는 안면도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는 정부로 하여금 더이상 「밀실행정」 위주의 정책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준 것 같다.
소수의 정책입안자들이 책상에 앉아서 결정한 것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의사인 것처럼 강행하려는 발상은 이제 더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안면도사태가 입증해준 셈이다.
1주일 동안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안면도 주민들의 시위사태는 원인을 따지고 보면 물론,서산 간척지 개발 후 잃어버린 어장의 보상문제 등 개발 뒷전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주민들의 불만누적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정부의 「비밀주의」와 「밀어붙이기식」 행정에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다.
정부는 3일 일부 언론에서 『안면도에 핵폐기물처리장이 건설된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방사성 폐기물처리장」이 아닌 「중간보관시설」 「연구시설」이라고 주민들에게 강조했다.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핵」 「원자력」 「방사성」 등의 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실제 폐기물처리장이 건설된다 해도 인근주민과 환경에 전혀 해롭지 않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밀어붙이기식 해명은 삼척동자라도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중간보관시설이 곧 핵폐기물 영구처리장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주민들 주장이다.
「중간보관시설」이니 「연구시설」이니 하는 탈을 쓰고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건설하려 했다는 주민들의 비난은 정국의 불안에 겹쳐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민들의 시위가 일자 「무지」나 「과민반응」 탓으로만 돌리려 해 끝내 행정마비라는 과격시위를 자초하고 말았다.
핵과 그 폐기물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정부는 핵에 대한 사항을 무조건 숨기려는 자세를 버리고 그 필요성과 실상을 제대로 알려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정부의 진지한 자세가 있었다면 방화ㆍ폭력까지 치달았던 주민들의 과격시위도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를 통한 해결에 있음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깨우쳐준 안면도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밀어붙이기식 행정태도를 버려야 하고 주민들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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