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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84% “구속영장 피해자 의견 반영돼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16일 오전 국화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16일 오전 국화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남성 A씨(31)가 피해자를 평소 스토킹해 온 직장 동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해 불법촬영과 스토킹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가해자 A씨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기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가 재판을 받던 중 앙심을 품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보복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는 만큼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자적인 구속사유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16일 한국경찰학회 학회지 ‘한국경찰학회보’에 따르면 염윤호 부산대 공공정책학부 교수 등은 ‘피해자 신변보호 제도 개선에 대한 경찰관의 인식 연구’ 논문을 통해 “보복범죄의 지속적 발생으로 제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만큼 보완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이 경찰관 3171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2652명(83.6%)이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자적 구속사유로 입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피해자에 대한 보복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현행법상 피의자 구속사유는 주거부정,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로 한정돼 있다.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 등 보복 가능성은 구속영장 발부 시 고려사항에 그치고 있다.

아울러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2667명(84.1%)이 구속영장 신청에 피해자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답했다. 경찰 단계에서부터 사건 당사자인 피해자 의견이 고려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이다.

피해자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이유로는 ‘형사처분에 있어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의 의견을 적절히 반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과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 가능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항목에 가장 많은 응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연구진은 장기적으로 보복범죄 가능성을 구속사유에 포함하는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구속사유의 확대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도 “구속의 상당성과 필요성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만큼 피의자나 피고인의 권리 보장 실현도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14일 오후 9시께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내부 화장실에서 여성 역무원 B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A씨를 체포해 전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가해자 A씨는 불법촬영과 스토킹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1심 선고 예정일 하루 전날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당초 불법촬영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서부경찰서는 지난해 10월 A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서부지법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우려와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A씨는 사전에 흉기를 준비, 피해자가 근무하는 신당역에서 위생모를 쓰고 약 1시간10분 동안 대기하다가, 피해자가 여자화장실을 순찰하러 들어가자 따라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지난해 이미 B씨를 불법촬영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B씨는 지난해 10월 7일 가해자 A씨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촬영물 등 이용 협박) 혐의로 서울 서부경찰서에 고소했다. 다음날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 서부지법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우려 및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A씨를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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