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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10월 물가 정점론'…농산물, 라면·과자에 환율까지 출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4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의 채소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14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의 채소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그간 강조해온 10월 물가 정점론이 흔들리고 있다. 예년보다 이른 추석이 지났는데도 농산물 가격이 여전히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데다 실생활과 밀접한 라면·과자 값도 줄줄이 인상되면서다. 달러당 원화 값도 1400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수입 물가를 더 밀어 올리는 양상이다.

1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가격이 추석 연휴 직전과 비교해 오르거나 비슷한 품목이 적지 않다. 이들 농산물은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대부분 큰 폭으로 올랐다. 여름부터 이어진 작황 부진에 남부 지방을 직격한 태풍 '힌남노' 피해가 겹친 탓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배추 한 포기 소매가는 8일엔 평균 8769원이었지만 14일 들어 1만883원으로 24.1% 뛰었다. 1년 전 5000원을 갓 넘겼던 배추가 1만원 넘는 '금값'이 된 것이다. 8일 2만7503원이던 사과(홍로) 10개 가격도 14일엔 3만2491원으로 올랐다. 양파와 당근, 깐마늘, 양배추, 미나리, 배 등도 오름세를 나타냈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가공식품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강(强)달러로 인한 환율 부담, 국제 곡물 가격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수입산 원재료를 쓰는 업체들이 연달아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이다.

농심은 15일부터 신라면 등 26개 라면 브랜드 가격을 평균 11.3% 인상했다. 오리온도 이날부터 초코파이 등 16개 제품 가격을 평균 15.8% 올렸다. CJ제일제당ㆍ대상은 포장 김치 가격을 10% 안팎 올릴 계획이며, 팔도는 다음 달 1일 라면값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특히 오리온의 가격 인상은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동종 업계에서 연쇄적으로 제품값을 올릴 확률도 높아졌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바구니 상황이 심상치 않지만, 정부는 추석 뒤 물가 상승세가 꺾일거란 기존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물가 전망에 대한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늦어도 10월경엔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론 서서히 안정화 기조로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한다"고 재확인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6월 6%, 7월 6.3%를 거쳐 8월엔 5.7%로 떨어지면서 수치상 상승세는 둔화한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도 '물가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은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서민들의 실질 임금 하락을 가져오는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란 기조가 일반적"이라면서 "시장 친화적 방법으로 물가를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내외적 변수가 계속 불거지면서 인플레이션이 정부 뜻대로 잡히지 않을 거란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주엔 태풍, 이번주는 환율 이슈가 연달아 터진 게 대표적이다. 또한 추석 후에도 고공행진 중인 식재료 가격은 외식 물가까지 자극할 수 있다. 지난달 기준 8.8%로 약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외식 물가 상승률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올해는 농산물 공급이 취약해서 추석 후에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있다. 곧 김장철도 다가오는 만큼 연말까지 농산물 물가는 꾸준히 오를 것으로 보인다"면서 "식재료 가격 부담에 외식 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어 서민층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다. 남은 하반기엔 물가 변수가 많은 만큼 정부가 농산물 추가 공급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먹거리뿐만이 아니다. 다음 달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예정된 가운데, 11월 이후엔 전 세계적 가스 대란과 에너지 가격 급등이 나타날 거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여기에 더해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원화 가치가 빠르게 급락하면서 수입 가격 상승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달러당 원화 값이) 1400원 선을 뚫으면 천장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오르면서 거시경제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7일 내놓은 '고인플레이션 지속가능성 점검' 보고서에서 "원자재 가격 반등 가능성, 수요 측 물가 압력 지속 등으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 최근의 물가 상승세는 과거 급등기에 비해 길게 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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