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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조성 위해 농민 땅 강제수용…법원 "토지주 유족에 배상"

중앙일보

입력

1980년 구로공단 전자제품 공장의 모습. 중앙포토

1980년 구로공단 전자제품 공장의 모습. 중앙포토

박정희 정권 시절 구로공업단지(구로공단) 조성을 위해 불법적으로 농지를 빼앗긴 농민의 유족들에게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6단독 이혜린 판사는 A씨의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가 유족에게 배상금 총 1억5791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1999년 1월 1일부터 연 5%로 계산한 지연이자를 지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약 23년간 이자가 쌓여 유족이 받게 될 총 배상금은 3억4000여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961년 9월 구로공단 조성 명목으로 서류상 군용지였던 서울 구로동 일대 약 30만평의 땅을 강제수용하고 농사를 짓던 주민들을 내쫓았다. 그러나 A씨를 비롯한 농민들 85명은 이 땅이 1950년 당시 농지개혁법에 따라 적법하게 분배받은 것이라며 1964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했다.

하지만 구로공단 조성에 차질을 우려한 당시 박정희 정권은 권력기관을 동원해 대대적인 '소송사기' 수사에 착수하면서 농민들과 담당 공무원들을 잡아들였다. 정부는 이 수사기록을 내세워 민사재판 재심을 청구했고 1989년 다시 토지 소유권을 가져갔다. A씨도 이 과정에서 체포됐다가 구속영장이 청구되기 전 땅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 석방됐다.

구로공단. 중앙포토

구로공단. 중앙포토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7월 "국가의 공권력 남용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에 피해자들의 민·형사 재심 청구가 잇따랐고 법원은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수백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연이어 내놨다.

이번 소송의 원고들 또한 A씨가 정부에 빼앗긴 토지 중 자신들의 상속분만큼의 손해를 배상해달라며 지난해 11월 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관련자들을 수사하면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유죄 형사판결을 받게 했고, 이를 이용해 종전 민사 패소 판결의 결론을 뒤집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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