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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제 부활 30년…지방재정 건강에 빨간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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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해룡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중앙대 행정대학원 교수

신해룡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중앙대 행정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튼실한가.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현장을 보면 재정 분권 수준은 여전히 낮고 자치재정은 불안정하다. 올해 통합재정자립도는 전국평균은 49.9%였다. 243개 지자체를 단위별로 보면 특별시·광역시 61.0%, 도 40.0%, 시 31.9%, 군 15.9%, 자치구 28.3%였다.

지방자치 재정은 중앙정부의 이전재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지자체의 재정 책임성을 떨어뜨리고, 국정 전반에 걸친 재정 운용의 비효율로 이어진다. 급기야 국가 전체의 재정 문제로 연결될 개연성이 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재정분권 낮고, 자치재정 불안정
주민 우선 등 재정원칙 잘 지키고
정약용의 ‘아껴쓰기’ 정신 실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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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볼티모어 시장을 16년, 메릴랜드 주지사를 8년 역임한 윌리엄 도널드 쉐퍼는 주민이 원하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집무실 한쪽 벽면에 다섯 가지 다짐을 붙여놓았다.  ①시민 ②지금 하자 ③처음부터 잘하자 ④예산 범위에서 하자 ⑤이 도시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 그는 재임 중 목표 없이 흔들릴 때마다 이 준칙을 돌아봤다고 한다.

이 준칙을 한국의 지자체 살림과 연계해 살펴보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시민(주민)이 우선이다. 시정의 성과는 시민이 얼마나 참여하는가, 시민이 얼마나 시정의 성과를 체감하는가에 달려있다. 시민의 재정 수요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시민을 위한 정책 수행의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 주민참여예산제를 활성화하고, 사업의 주민수혜도를 점검해야 한다. 시민 생활과 직결되는 각종 정책과 관련해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 주민소환, 주민조례발안제 등이 명실공히 지역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치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둘째, 지금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now or never)을 찾아서 해야 한다. 지방재정 사정을 외면한 채 너도나도 당선되기 위해 경쟁적으로 남발했던 공약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에 따라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것은 시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기득권화·화석화한 예산을 도려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셋째, 처음부터 잘하려면 면밀한 사전진단 없이 무계획적으로 전시 행정 하듯 사업을 추진하면 안 된다. 중간에 취소되거나 중단되면 막대한 재원이 낭비된다.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지방재정계획, 투자심사, 공유재산관리계획 등 예산 편성과 의결 과정에서 법정 절차를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재원 배분의 왜곡을 최소화하고 투자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지역 인프라 구축 사업이 계획 오류 때문에 하염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티스푼 공사’가 되는 것도 방지해야 한다.

넷째, 가급적 주어진 예산 범위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재정 운용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 지자체는 채무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에 재정적자 규모를 늘리기 쉽다. 잦은 추경 편성은 당초의 예산 기조를 흐트러뜨리고 사업을 누더기로 만든다. 편법적 추경 운용을 더는 방관하면 안 된다.

다섯째, 우리 지역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지방 소멸에 선제 대응한다는 의지를 갖춰야 한다. 예산 편성할 때 ‘ABC 지역발전 전략’이란 쾌적한 환경과 생활의 질(Amenity), 경제 활동(Business), 성숙한 문화활동(Culture)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경제 활동을 위해서는 기업(Industry)을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투자유인책(Investment)을 발굴하고, 결국 사람(Individual)이 그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3I 시책’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인구가 건국 이래 처음 자연 감소했다는데 떠나는 마을이 아니라 돌아오는 마을로 만들려면 50년, 100년 뒤를 내다보며 지역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재정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재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강조한 ‘아껴서 쓰는’ 절용(節用) 정신을 가슴에 새기면서 틈날 때마다 지방자치법과 지방재정법 등을 꼼꼼하게 정독하길 권한다. 노자는 『도덕경』 3장에서 “마음은 비우고(虛其心) 배는 부르게 하는 것(實其腹)이 성인(聖人)의 다스림”이라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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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룡 전 국회예산정책처장, 중앙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