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벤스케의 서울시향 3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음악감독의 임기가 올해 12월 31일 재계약 없이 종료된다. 새 음악감독으로 누가 올지도 관심사다. 핀란드 출신 벤스케 감독은 2020년 1월 서울시향에 부임했다. 정명훈 전 음악감독이 사임한 지 4년 만이었다. 송사와 반목으로 얼룩진 서울시향 내부를 다독이고 화합의 리더십이 절실할 때 그가 왔다. 라티 심포니와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를 발전시킨 ‘오케스트라 빌더’로 기대를 모았다.

2020년 2월 취임 연주회인 말러 교향곡 2번 ‘부활’로 벤스케호의 출발을 알릴 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벤스케 지휘 예정 무대가 4주 이상이나 취소될 줄은…. 갓 부임한 음악감독의 존재감을 알리려면 더 많은 무대에 섰어야 했다. 두 번째 해인 지난해에는 달리아 스타세브스카, 에리나 야시마 등 여성 지휘자들이나 전 수석객원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에 비해 음악감독으로서 뚜렷한 강점을 어필하지 못했다. 연말 서울시향 최고 인기 레퍼토리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지휘대에 서지 못한 점도 불운이었다. 재작년 ‘합창’은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로 온라인 생중계됐다. 지난해 기대했던 ‘합창’은 10일 격리 방침을 이유로 벤스케가 오지 않아 부지휘자 윌슨 응이 지휘대에 올랐다.

연말 임기가 끝나는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 감독. [사진 서울시향]

연말 임기가 끝나는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 감독. [사진 서울시향]

벤스케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연속으로 못 올 뻔했다. 서울시향 측의 노력으로 격리가 풀리면서 다행히 모차르트 ‘레퀴엠’을 지휘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상투스’에서 연주 중단 뒤 다시 시작하는 등 순탄치 않은 모습을 노출했다. 벤스케는 서울시향 단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지 못했다. 일부 단원들에 따르면 벤스케는 리허설 때 큰 목소리를 내고, 거기에 눈물 흘릴 정도로 상처를 입은 단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벤스케의 연임을 주장하는 내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벤스케가 서울시향에 부임하며 강조한 3개의 전략은 ‘전용 콘서트홀 마련’ ‘음반 작업’ ‘페스티벌을 통한 명성 추구’였다. 이 가운데 음반 작업만이 유일하게 결실을 맺을 전망이다. 윤이상 바이올린 협주곡 3번(박수예 협연), 실내교향곡 1번 등이 담긴 음반은 9월 스웨덴 레이블인 비스(BIS)에서 발매된다.

직접 접한 벤스케와 서울시향의 연주 중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작품은 동향의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곡들이었다. 교향곡 1번, 3번(2회), 4번, 5번이 빼어났다. ‘핀란디아’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벤스케는 임기 종료 이후인 내년 상반기에 서울시향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 6번, 2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후에도 객원지휘로 북유럽 작품들을 들려줬으면 한다.

벤스케 이후 서울시향은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 새로 부임하는 음악감독이 세계적인 문화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서울시향의 르네상스를 꽃피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