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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가라" 심각했는데…40대 암환자, 집에 있게한 치료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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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선영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왼쪽)와 재택의료팀 간호사가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환자 가정에 진료를 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선영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왼쪽)와 재택의료팀 간호사가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환자 가정에 진료를 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서울 강북구 이모(46)씨는 2017년 난임치료 중 우연히 자궁경부암을 발견해 수술과 항암치료를 했다. 그러다 2년 후 재발했고, 항암치료가 다시 시작됐다. 암 세포가 복막으로 전이됐고 장이 계속 마비됐다. 먹으면 토해서 병원에 실려가 영양공급용 콧줄을 달았다. 장루(인공항문) 수술을 했고, 수분과 소화액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서 탈수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가길 반복했다. 일주일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하루 이틀 뒤 또 입원했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응급실에서 20시간 앉아서 대기한 적도 있다. “요양병원에 가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도 받았다. 하지만 이씨는 간절히 집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오랜 병원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쳤고,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고 싶었다.

 이 씨의 요양병원·응급실 행을 막아준 게 '중증성인환자 재택치료'였다. 서울대병원 이선영 공공진료센터 교수가 처음에는 주 2회 왕진을 왔고, 중심정맥(심장에서 팔로 가는 큰 혈관)을 통해 영양제 수액을 가슴에 놔줬다. 간호사가 방문해 주사를 교체했다. 매일 수액 교체는 이씨가 직접했다. 이후 이 교수가 영상통화로 진료했다. 피 검사 수치를 일일이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혀 내밀어 보세요"라고 원격진료를 했고, 이 씨는 검사 결과 등을 질문했다. 이 씨는 그는 “재택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도 응급실을 들락날락하며 고통받거나 요양병원에 누워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씨는 방문진료와 원격진료를 동시에 받았다. 덕분에 이 씨의 병원행이 크게 줄었고 삶의 질도 올라갔다. 의료비도 절감했다.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도 일주일 이상 입원하기 힘들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간다. 환자가 감당을 못한다. 가족이 있어도 수발을 들 수 있을 뿐이다. 의료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 이씨의 경우 간호사가 찾아가 기본적인 처치를 하고 의사의 원격진료가 더해지면서 환자가 안정을 찾았다.

요양병원 입원 권유를 받았던 암 환자 이모씨는 재택의료 덕분에 집에서 머무르며 치료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사진은 이씨가 24시간 맞고 있는 중심정맥용 수액. 이에스더 기자

요양병원 입원 권유를 받았던 암 환자 이모씨는 재택의료 덕분에 집에서 머무르며 치료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사진은 이씨가 24시간 맞고 있는 중심정맥용 수액. 이에스더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비대면 진료는 원격진료로 불린다. 코로나 시기에는 초진부터 원격진료를 허용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에는 달리가야 한다고 권고한다. 서울 강남구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이상덕 원장은 "원격진료, 재택진료는 이제 막을 수 없다. 초고령화가 진행돼 5년 뒤에는 방문진료로 쏠릴 것"이라며 "초진은 반드시 대면진료를 해야 하고, 이후 재진부터 원격진료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광역시 늘다봄의원 원장도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올 때 걸음걸이를 보고 얼굴 상태를 보는 것부터 진찰이 시작된다. 초진부터 원격진료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재진 환자 중에서도 환자 상태를 충분히 알게 됐을 때 전화 진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덕 원장은 "원격의료가 성공하려면 단말기(디바이스)와 결합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진료,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고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아1형 당뇨환자의 피부에 모니터를 심어서 블루투스로 당 수치가 의료진에게 자동으로 가거나, 심장 부정맥 환자에게 패치를 붙여서 심장 상태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서울대병원 재택의료팀의 진료 가방 속 모습. 청진기와 체온계, 혈압계와 각종 처치 도구들이 담겨있다. 강정현 기자

서울대병원 재택의료팀의 진료 가방 속 모습. 청진기와 체온계, 혈압계와 각종 처치 도구들이 담겨있다. 강정현 기자

 중증 성인환자 재택치료는 서울대병원만 시행한다. 2년 전 병원 자체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다. 의사 4명, 간호사 6명, 사회복지사 1명이 팀을 이룬다. 서울 전역의 환자 300명을 방문한다. 중증 소아환자 재택치료는 정부의 시범사업에 해당돼 의사 진료 수가가 있지만 성인은 이런 게 없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민선 교수는 "목에 관을 달고 있는 환자에게 '요양병원에 가라'고 쉽게 말하지만 의식이 뚜렷한데다 임종이 가까운 것도 아닌데, 당연히 집에 있어야 한다"며 "중증환자는 여러 개 진료과가 관련돼 있다. 이걸 정리해서 플랜을 짜서 관리할 지역사회의 진료 네트워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선영 교수는 "처치가 필요한 가정 환자가 점점 늘고 있는데, 이들이 집에서 잘 살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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