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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천연가스 OPEC'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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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러시아의 자원무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주요 석유.가스 수출국인 러시아가 에너지를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국제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4일 러시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유사한 천연가스 수출국 카르텔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러시아가 옛 소련에 속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알제리.카타르.리비아.이란 등을 묶어 가스 수출국 카르텔을 설립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비밀 연구보고서를 작성해 지난주 26개 회원국 대사들에게 보냈다. 나토의 경제위원회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고 있으며, 특히 '반러시아, 친서방' 성향을 보이는 이웃 국가인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가 우선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초 러시아가 가스 가격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일시 중단하고, 최근엔 그루지야에 대한 가스 수출가를 두 배 이상으로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에너지를 정치 무기화하고 있는 경향에 대한 비판이었다. 신문은 "실제 러시아가 카르텔을 만들 수 있을지를 떠나 이번 나토 보고서는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높아가는 긴장을 드러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가스관을 통해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25%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올해 초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사태로 우크라이나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폴란드는 3주 동안 국내 화학공장들에 가스 공급을 못해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다.

러시아는 그러나 가스 수출국 카르텔 설립 시도에 관한 신문 보도를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부대변인은 "러시아는 공급자와 소비자의 상호의존을 에너지 정책의 주요 원칙으로 삼고 있다"며 "미친 사람만이 러시아가 가스를 이용해 유럽을 협박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가스 가격 인상은 소련 시절 옛 '형제국'에 대한 우호가격을 국제 시세에 맞춰 재조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유럽은 이 같은 러시아의 설명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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