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중국읽기

미국이 중국 ‘대토벌’ 나섰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외교안보 자문 역할을 하는 정융녠(鄭永年) 홍콩중문대 글로벌 및 당대 중국고등연구원 원장은 중국이 “전략적 기회”를 맞게 됐다고 봤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에서 인도-태평양으로 힘을 옮기는 미국의 발걸음이 늦춰질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미국의 대중 압박이 약화하며 중국은 숨 쉴 공간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넉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데 현재 상황은 과연 정 원장의 예측대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의 대중 압박이 더욱 거세져 미국이 중국 대토벌에 나섰다는 평가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의 대중 압박이 더욱 거세져 미국이 중국 대토벌에 나섰다는 평가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대중 압박이 줄어들기는커녕 마치 ‘대토벌(大圍剿)’에 나선 듯 ‘종합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는 중국 싱크탱크의 분석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이는 지난달 말 중국인민대학중양(重陽)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봄철 ‘중·미 포럼’에서 발표된 연구 보고서의 결론이다. ‘대토벌: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 이래 미국의 대중 정책 진전 평가와 중국의 대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연구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움직임을 중국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고서 결론은 정 원장의 예상과 완전히 다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면적인 경쟁 움직임은 전혀 늦춰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중국에 ‘종합 위협’ 카드를 꺼내 들었고,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전략 포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까지만 해도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취한 행동은 무려 24개 항목에 달한다. 여기엔 경제무역과 금융, 이데올로기, 군사 과학기술, 지연(地緣) 정치 등 각 부문을 망라한다. 당초 경제무역에서 시작한 미국의 대중 압박이 이젠 이데올로기 요소를 가미하며 그야말로 말로는 ‘종합 위협’, 실제론 ‘대토벌’에 나선 양상이라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미국은 대중 압박을 강화해 5월 중순까지 무려 24개의 새로운 제재를 중국에 가했다고 중국은 말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미국은 대중 압박을 강화해 5월 중순까지 무려 24개의 새로운 제재를 중국에 가했다고 중국은 말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5대 부문에서 전략 경쟁을 펼치고 있다. 첫 번째로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무역 그룹’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고 한·일과 함께 반도체 동맹을 건설하면서 중국엔 러시아와의 교역을 끊으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금융을 통한 중국기업 압박이다. 미국에 상장된 중국개념주 250여 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8개가 6차례에 걸쳐 상장폐지임시명단에 오른 게 그 대표적인 예다. 자본시장을 통한 중국기업 때리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대중 압박 세 번째는 이데올로기 분야다. 이른바 자유와 인권, 민주 등 가치관 외교를 내세우며 중국을 무차별 공격 중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전 ‘중국에 먼저 통보했다’,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을 하려 한다’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대만이다’ 등 온갖 소문을 흘리며 중국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거다. 네 번째는 살라미 전술로 대만 문제에서 중국을 도발하고 있다. 대만에 대만 무기 판매 수위가 계속 올라가고 ‘대만을 중국의 일부분으로 인정’하던 미 국무원 홈페이지 내용이 사라지는 등 대만 문제에서 중국을 계속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상공에서 격추돼 추락한 러시아 헬기의 잔해 모습.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상공에서 격추돼 추락한 러시아 헬기의 잔해 모습.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대중 압박 다섯 번째는 군사과학기술 영역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을 억제하고 인공지능과 정보통신 분야에서의 중국 봉쇄, 중국 군사과학기술 분야의 인재 양성 제한 등 중국의 군사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과학기술 견제가 부단히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앞으로 미·중 간엔 세 가지 힘겨루기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고강도 힘겨루기로 미·중이 전면적인 군사대결로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엔 인터넷 전쟁, 대만이나 남중국해 등에서의 무력 충돌, 우주 전쟁, 핵전쟁, 중국 지도부의 권위를 깎아내려 중국 사회의 단결을 해치는 인지전(認知戰) 등이 모두 포함된다.
두 번째는 중강도 힘겨루기로 각종 디커플링이 발생한다. 과학기술 영역에서 분리되고 경제가 디커플링 되며 인문교류까지 중단되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저강도 힘겨루기로 미국이 국내모순을 가리기 위해 부단히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며 반중 정서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결국 미·중 관계는 단시간 내 개선될 리 없다. 향후 미·중 관계가 경쟁을 위주로, 협력을 보조로 흐를 것이기에 중국으로선 ‘경쟁을 피하려는’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의 대중 압박이 더욱 거세져 ‘종합 위협’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중국에서 나왔다. [EPA=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의 대중 압박이 더욱 거세져 ‘종합 위협’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중국에서 나왔다. [EPA=연합뉴스]

‘미·중 관계 긴장 상태’라는 양국의 뉴노멀(新常態)에 적응하는 가운데 미국과의 협력 공간을 주동적으로 찾는 노력을 중국은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중국으로선 지난 40년간 미·중 간 경제 총량의 차이가 계속 좁혀져 온 추세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중국 경제가 올해 상하이를 강타한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타격을 받아 미·중 경제력 차이가 줄지 않고 오히려 커질 경우 시장과 국민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러고 보면 시진핑 주석이 지난 4월 말 왜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미국보다 높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는지 짐작이 간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게 중국의 일당제가 서방의 자유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보고서는 미국의 대중 압박에 대응해 중국 중심의 무역과 금융 질서, 에너지 공급망 구축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학자와 전문가가 참여했다는 보고서는 눈여겨볼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중국 자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중국에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의 대중 압박이 더욱 거세져 마치 미국이 중국 '대토벌'에 나선 모양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에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의 대중 압박이 더욱 거세져 마치 미국이 중국 '대토벌'에 나선 모양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중 관계 악화 분석에 있어 시진핑 체제가 갖는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는 점이다. 중국은 늘 미국의 대중 압박 요인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미국이 국내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그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중국을 악마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세계 패권을 계속 움켜쥐기 위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차원에서 중국을 못살게 군다는 것이다. 일부 맞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떠나 모두 중국 때리기에 동참하는 건 아니다. 중국의 현 권위주의 체제가 보여주는 많은 문제점이 미국에서 당파를 초월한 대중 정책을 낳고 있다. 이런 문제를 짚을 수 없으니 중국의 대책은 효과가 떨어진다. 그 결과 미·중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더 거세진 미국의 대중 압박 #5월 중순까지만 24개 항목 걸쳐 중국 때리기 나서 #‘대토벌’에 나선 듯 ‘종합 위협’ 가한다는 평가 나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