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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대만해협은 국제수역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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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불가에서 피안(彼岸)은 건너편 즉 깨달음의 언덕을 뜻한다. 반면 중생의 고단한 현실은 차안(此岸)으로 일컬어진다. 이쪽저쪽 언덕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 양안(兩岸)이다. 그런 양안이 중국과 대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 건 1972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에 의해서다. 중국과 대만이 두 개의 주권 국가로 비칠 수 있는 걸 피하는 말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해협 양안의 중국인’이란 표현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해협’은 대만해협을 말한다.

중국이 최근 ‘대만해협은 국제수역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그 발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이 최근 ‘대만해협은 국제수역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그 발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대만해협의 법적 지위 문제가 최근 미·중 갈등의 새로운 요인으로 부상했다. 지난 12일 미 블룸버그통신이 ‘대만해협은 국제수역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중국이 미국에 지난 몇 달씩지속해서 강조하고 있어 미국의 경계심을 낳고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대만해협은 지리적으로 대만과 중국 푸젠(福建)성 사이에 놓여 있으며 길이 370Km에 폭은 북쪽이 200Km, 남쪽은 410Km다. 양안 간 가장 좁은 폭은 130Km에 불과하다.
블룸버그 보도 이후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대만해협과 관련해 보다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왕은 “대만해협은 중국의 내수(內水)와 영해, 접속수역,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해당한다”며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주권과 주권권리, 관할권을 향유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해양법엔 근본적으로 ‘국제수역’이란 말이 없다”며 “관련 국가가 대만해협을 ‘국제수역’이라 부르는 건 그 의도가 대만문제에 개입해 중국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는 구실을 찾기 위한 데 있다”고 주장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국제해양법엔 '국제수역'이란 말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국제해양법엔 '국제수역'이란 말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관련 국가’는 누구를 말하나. 미국인가? 지난 11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과 이어진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선 모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명이 발표됐다. 이는 대만해협 사태에 대한 한·미·일 3국의 개입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도 대만해협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중국이 왜 갑자기 ‘대만해협이 국제수역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미국 등 서방은 이제까지 대만해협을 국제수역이라 부르며 이른바 ‘항행의 자유’ 활동을 펼쳤다. 특히 미국의 경우 거의 매달 대만해협에 군함을 통과시키며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을 견제하는 작전을 해왔다. 대만해협의 일부 수역이 중국과 대만의 영해에 속하긴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EEZ나 공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EEZ의 경우에도 연안국의 수중 및 해저자원에 대한 권리는 인정하되 그 표면과 상공에서 군함과 항공기가 다니는 건 자유라는 입장에서다.

미 해군 제7함대 소속의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인 샘슨함이 지난 4월 26일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샘슨함페이스북=뉴시스]

미 해군 제7함대 소속의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인 샘슨함이 지난 4월 26일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샘슨함페이스북=뉴시스]

그러나 중국은 ‘국제수역’이라는 말이 국제법에 명시된 법률 용어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설사 EEZ에서 항행 및 비행의 자유를 향유한다고 해도 연안국이 채택한 법령을 준수할 것을 유엔해양법이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중의 견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운데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건 중국이 왜 이 시점에 대만해협의 법적 지위 문제를 들고 나왔을까 하는 점이다. 원래 대만해협의 법적 지위 문제는 미·중 사이의 중요 의제가 아니었다. 한데 몇 달 전부터 중국이 여러 차례 그것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국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왜 그러나. 이와 관련해 크게 세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이 대만해협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률적인 근거를 쌓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쟁이 터졌을 때 국제법적인 측면에서 타국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고 또 중국이 대만 봉쇄에 나서면서 합법적이라는 명분도 쌓을 수 있다는 거다. 두 번째는 ‘대만해협이 국제수역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각국의 반응을 떠본 뒤 이에 맞춰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공세적 외교를 펼치는 중국이 최근 미국을 상대로 대만해협은 국제수역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집권 이후 공세적 외교를 펼치는 중국이 최근 미국을 상대로 대만해협은 국제수역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 신화망 캡처]

세 번째는 중국 국내 선전용이다. 대만문제에서 미국과 서방에 강경한 모습을 보여 중국의 위신을 세운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국내 권력투쟁이 심각하거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위가 약화할 조짐을 보일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중국이 우선적으로 노리는 건 대만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담론 투쟁에서의 승리다. 즉 ‘대만문제의 국제화’를 막자는 게 중국의 일차적인 목표로 보인다.
중국은 대만문제를 줄곧 국공내전(國共內戰)이 남긴 문제라고 말한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국민당과 공산당이 다투다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문제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외세는 개입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대만해협이 국제사회에서 현재 미국이 부르는 것처럼 ‘국제수역’으로 통용된다면 대만해협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두 국제문제처럼 여겨질 수 있다. 국제문제가 된다면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건 당연하다. 지난 7일 유럽연합에 이어 11일엔 한·미·일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중국의 바람과는 반대로 대만해협으로 상징되는 대만문제가 점차 국제문제화되고 있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 정부는 한일 및 유럽연합 등과 함께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며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정부는 한일 및 유럽연합 등과 함께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며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만해협이 국제수역이 아니다’라는 중국의 주장은 이 같은 국제사회의 흐름 속에 나왔다. 대만문제에서 외세의 개입을 막아보려는 중국의 속내가 일단 ‘국제수역’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데 중국이 그런 뜻을 밝히자마자 대만문제는 더욱 국제문제화되는 모양새다. 대만해협이 국제수역이 아니라 중국 관할권에 놓인다면 원유 등 각종 해상 생명선을 중국의 손에 맡겨야 하는가 하는 걱정을 한·일 등 수 많은 국가가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해양법에 국제수역이란 말 없다” 주장하는 중국 #대만해협에서 주권과 관할권 갖는다 목소리 높여 #'대만문제의 국제화' 막기 위한 사전 작업 분석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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