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중국읽기

시진핑 시대의 상산하향 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내려가 빈농으로부터 재교육을 받아라”. 1968년 12월 2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가 전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시다. 이에 따라 10년간 약 1700만 명의 지식청년이 농촌으로 향했다. 산으로 올라가고 시골로 내려가는 이른바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이 펼쳐진 것이다. 농촌에서 노동하는 가운데 사상을 단련하고 농촌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말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문혁의 광풍으로 경제가 망가져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게 되자 사회 폭동을 우려한 끝에 내놓은 고육지책이었다.

1968년 12월 2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내려가 빈농으로부터 재교육을 받으라”는 마오쩌둥의 지시를 전하면서 대대적인 ‘상산하향’ 캠페인을 벌였다. [중국 바이두 캡처]

1968년 12월 2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내려가 빈농으로부터 재교육을 받으라”는 마오쩌둥의 지시를 전하면서 대대적인 ‘상산하향’ 캠페인을 벌였다. [중국 바이두 캡처]

그로부터 5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중국에서 비슷한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일 중국 교육부 등 4개 부처가 공동으로 대학 졸업생의 농촌 취업을 권장하는 통지문을 발표했다. 농촌으로 내려가 창업할 경우 각종 세금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는 게 골자였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은 지난 15일 “올해 10만 명의 대졸자 취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주요 방안은 농촌에서의 취업을 뜻하는 ‘기층(基層, grass-roots) 취업’ 장려였다. 16일엔 중국 글로벌타임즈가 낙후한 서부의 산골 농촌 마을로 가자는 ‘Go West’ 프로그램을 조명하기도 했다. 현대판 상산하향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배경엔 “대학 졸업생의 취업 문제를 잘 처리하라”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가 깔려있다. 중국에선 올여름 역대 최초로 1000만 명이 넘는 대졸자가 쏟아진다. 지난해보다 167만 명이 많은 1076만 명이 졸업해 취업 전선에 나서는 것이다. 한데 문제는 중국 경제가 이들을 수용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지난 4월 중국의 도시 실업률은 6.1%로 코로나 사태가 처음 터졌던 2020년 2월의 6.2%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이 기간 16~24세 청년층의 도시 실업률은 18.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게 5월엔 다시 18.4%로 올라가며 기록을 경신했다.

중국 영자지 글로벌타임즈는 지난 17일 현대판 상산하향 운동인 ‘기층 취업’에 나선 청년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중국 글로벌타임즈 캡처]

중국 영자지 글로벌타임즈는 지난 17일 현대판 상산하향 운동인 ‘기층 취업’에 나선 청년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중국 글로벌타임즈 캡처]

이건 정부 발표이고 실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중국의 기업 수는 약 1억 5000만 개에 달했는데 이게 올해 들어 1~4월 동안 13% 줄었다. 취업 인구는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기업의 감원까지 고려할 경우 20% 정도 감소했을 것으로 본다. 4억 4000만 명의 취업 인구 중 8800만 명이 실업자 신세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중국 경제가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론 단연 코로나 사태가 꼽힌다. 그러나 일각에선 코로나 사태란 게 눈 내린 데 더해진 서리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짜 눈은 중국 경제의 하강이라는 지적이다. 중국 경제는 왜 힘들어진 걸까.
이와 관련 지난 20일 중국유럽상회가 발표한 보고서가 시사하는 바 크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을 떠나려는 유럽회사가 지난 2월 조사에선 11%였는데 4월엔 23%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원인으론 세 가지가 거론됐는데 코로나 사태, 중국 경제 성장세 둔화, 사업 환경의 정치화였다. 주목할 건 바로 이 중국 사업 환경의 정치화다. 지난 몇 년간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를 이끌어온 민영기업을 제쳐놓고 다시 계획경제 시대의 주력인 국유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이해하기 힘든 많은 일을 발생시켰다. 마윈(馬云) 때리기로 상징되는 빅테크 기업 혼내기, 파벌 싸움 의심을 낳는 부동산업계 단속, 청소년 부담 없앤다며 숙제와 함께 사교육 시장을 통째로 없애는 등 경제를 해치는 무수한 일을 벌였다.

마오쩌둥 시대 상산하향 운동엔 10년간 1700만 명의 청년이 참가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마오쩌둥 시대 상산하향 운동엔 10년간 1700만 명의 청년이 참가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여기에 과학 방역의 성격보다는 서방과의 체제 우위 전쟁 성격을 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걸핏하면 봉쇄가 단행되다 보니 경제가 나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경제가 악화하면 총리 리커창(李克强)을 내세워 수습에 나서도록 하는 게 최근 중국 정가의 모습이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달 25일 ‘전국 경제안정 화상회의’를 개최했는데 보기 드물게 무려 10만여 명의 간부가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중국의 경제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인데 여기서 리 총리가 강조한 말이 시사하는 바 크다.
리 총리는 중앙정부 차원의 새로운 경제안정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면서 지방정부에 중앙의 재정 지원을 기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중앙재정은 국방비와 의무교육비, 특대형 재난에 대처해야 할 비용을 빼놓곤 없으니 지방정부가 가불해 쓸 생각을 하지 말라고 미리 단속을 한 것이다. 지방정부로부터 ‘밥 지을 쌀’이 없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건만 알아서 이 어려운 시기를 넘기라고 지시한 것에 다름 아닌 셈이다. 이처럼 힘든 경제 상황에서 사상 최초로 1000만을 돌파한 대졸자 취업 대책으로 50여 년 전의 상산하향 운동이 소환된 것이다. 왜? 피 끓는 청춘들을 그냥 둬선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올해 1000만 대졸자가 쏟아지게 되자 이들의 일자리 대책으로 농촌 취업을 권장하고 있다. [중국 글로벌타임즈 캡처]

중국은 올해 1000만 대졸자가 쏟아지게 되자 이들의 일자리 대책으로 농촌 취업을 권장하고 있다. [중국 글로벌타임즈 캡처]

과거 대륙의 패권을 놓고 국민당과 공산당이 다툴 때 중국의 많은 청년이 공산당을 찾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에 끌린 측면도 있지만, 국민당 정부가 일자리를 마련하지 못하자 대거 공산당에 가입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하게 되면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이게 학생운동, 나아가 사회운동으로 발전하면 공산당의 집권 정통성이 흔들리게 된다. 일찌감치 사회불안의 뇌관인 학생들을 시골로 보내 사회폭발의 압력을 줄이자는 게 현대판 상산하향 운동을 벌이는 배경인 것이다.

올여름 사상 최대 1076만 대학 졸업자 쏟아지는 중국 #코로나와 경기 침체 등으로 최악의 취업난 예견되자 #마오쩌둥 시대 농촌으로 학생 보낸 상산하향 운동 소환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