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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말에 귀기울인 국민, 이제 그들의 목소리 들을 차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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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10일 오전 취임식을 보기 위해 국민 4만1000여 명이 운집한 서울 여의도 국회 상공에 무지갯빛 구름인 ‘채운’이 떠 있다. 김성룡 기자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10일 오전 취임식을 보기 위해 국민 4만1000여 명이 운집한 서울 여의도 국회 상공에 무지갯빛 구름인 ‘채운’이 떠 있다. 김성룡 기자

5월 10일, 무지개가 떴다. 그는 별의 순간을 지나 한낮의 광장에 섰다. 별의 순간은 어둠이 배경이었기에 더욱 밝게 빛났다. 그러나 한낮의 광장은 발밑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밟은 채로 정수리 위의 태양을 견뎌야 한다. 고독하지만, 피할 수 없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국회 앞 광장은 아침 8시쯤부터 차곡차곡 채워졌다. 국민 참여 신청분에 당첨된 이들이 4만100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니, 인파 대부분은 시민이다. 식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니 문득 궁금해졌다. 참가자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있다. 폄훼하고 침범할 수 없는 개개인의 스토리. 그 어떤 스토리가 기대와 의미가 되어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일까?

김별아

김별아

지금은 그들이 새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기념식이 끝나는 순간부터는 대통령이 그들의 스토리를 새겨듣고 보듬어야 한다. 나의 지지자, 우리 진영의 외침만이 아닌, 오늘 그토록 거듭해 외쳤던 ‘국민’ 목소리를.

식전행사 주제는 ‘꿈’이었다. 무대 배경인 백월(back wall)을 어린이들이 꿈꾸는 나라를 그린 그림으로 장식했고, 차별 없이 꿈을 꾸고 공정하게 꿈을 이룬다는 취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공연단이 연주하고,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이 치어리딩과 뮤지컬 등을 통해 꿈을 표현했다.

전문 공연진이나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 아마추어의 공연과 관객석 방향으로 길이 나 있는 돌출형 무대 등에 대해 취임식 총감독은 새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을 피하고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려다 보니 9년 만의 취임식이 시대 감성을 따라잡지 못해 진부해진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사회적 약자와 미래 세대를 포용하며 국민 곁으로 다가가겠다는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취임사 메시지도 선명했다. 양극화와 사회 갈등, 공동체의 결속력 약화 등 인류 사회의 위기에 직면해 무엇과 싸워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고민이 응축된 연설문이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반(反)지성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대목이나 자유·인권·공정·연대 등 아름답지만 실현하기 쉽지 않은 가치를 또박또박 발음할 때는 새 대통령이 자신에게 하는 다짐으로 들렸다.

취임식 슬로건인 ‘다시, 대한민국!’의 ‘다시’와 ‘대한민국’ 사이의 반점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재도약을 위해 숨을 고르며 각성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다시’여야 한다.

나는 지난주까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 국민통합위원회에서 사회문화분과의 국민 통합 과제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30년 동안 골방에서 소설이나 쓰던 칠실지우(漆室之憂)가 분연 세상 구경을 나선 셈인데, 나 같은 개인주의자가 ‘통합’을 말할 만큼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갈라치기와 ‘내로남불’은 이제 그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통합의 동력으로 삼아 목전의 난제들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취임사 도중 주위가 술렁거려 뒤돌아보니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좋은 일이야. 잘될 거야!” 사람들 얼굴이 모두 환했다. 부디 새 대통령이 오늘 밝힌 대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지혜와 용기로 극복한 ‘위대한 국민’을 뒷배로 삼겠다는 각오를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맑은 하늘과 쏟아지는 햇빛,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5월의 하루였다.

김별아 소설가·인수위 국민통합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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