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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3대 구라’ 방배추의 미수잔치…당대 입담가들, 인사동 총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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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6일 방배추씨 88세 생일 축하연. 왼쪽부터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방배추, 딸 방그레, 박석무, 이재오씨. [사진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채원희]

6일 방배추씨 88세 생일 축하연. 왼쪽부터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방배추, 딸 방그레, 박석무, 이재오씨. [사진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채원희]

‘구라’는 거짓말이나 이야기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다. 구라를 잘 치거나 걸쭉하게 풀어내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국내 3대’나 ‘한국 3대’보다 반드시 ‘조선 3대’라고 해야 어울리는 세 명의 걸출한 구라가 있다. 백기완(지난해 2월 타계)·방배추·황석영(79) 세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그 가운데 방배추(본명 방동규) 선생의 88세, 미수 축하연이 지난 6일 저녁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구중서·임헌영 문학평론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 이부영·이재오·유인태·장영달 전 국회의원, 임재경·허술 언론인,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 등 축하객들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질펀한 문화를 아쉬워하며 선생의 장수를 축하했다.

1935년 북한 땅 개성에서 태어난 선생의 일생은 ‘낭만주먹’이라는 또 다른 별칭처럼 바람기와 물기가 함께 묻어나는 파란만장하다. 선생은 경신고 역도부 ‘10대 어깨’ 시절 백기완에게 “사나이가 천하를 호령해야지 사람을 두들겨?”라는 일갈과 함께 뺨을 얻어맞은 뒤 깨닫는 바가 있었다고 한다. 60~70년대 재야세력과 어울린 끝에 간첩으로 몰려 구속돼 악명 높은 이근안 경관에게 고문당했다. 그러다 몇 년을 파리에서 보내다 돌아와 양장점을 냈다. 한 시절을 함께한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절 경복궁 관람안내 지도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선생의 노익장은 여전했다. 박석무 이사장이 “앞으로 20년 더 사시라”고 건배사를 하자 “38년은 더 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사회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황석영은 역시 황석영이야. 왜 안 오시느냐고 좀 전에 전화했더니 아직 익산이라며, ‘9일 아냐?’ 이러시더라고”라며 너스레를 떨자 “맹수끼리는 같이 있는 게 아니거든”이라고 받아쳤다.

축하연은 ‘구라 논쟁’이 불거지며 흥을 더했다. YS 정부 때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정남 선생이 60년대 풍경을 소환하면서다.

복계 전 청계천에서 막노동하던 선생을 사상계 장준하 등과 찾아가면 “보통 사람들은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나 같은 노동자들이 내는 고통에 찬 ‘우웅~’ 소리를 (똑똑한 사람들이) 잘 알아듣고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선생이 다그쳤다는 일화다.

임진택 소리꾼은 “학벌이 변변치 않아야 하고, 주먹이 세지만 쓰지 않는 진짜 주먹이어야 하며, 구라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어야 한다”는 구라의 3대 조건을 강조했다. 물론 방배추 선생의 구라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임옥상·박재동 화백이 그림을 선물하고, ‘무면허 화가’ 유홍준 전 청장도 손수 그림을 그린 부채를 증정했다. 이 모든 과정을 선생의 딸 방그레씨가 지켜봤다. 누군가 말했다. “여간해서는 보기 어려운 조합이 자리를 함께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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