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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라, 잊으라, 버티라" 탁현민이 尹정부 후임에 한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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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의전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탁현민 의전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애정하라, 배우라, 잊으라, 버티라”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8일 새 정부의 의전비서관에게 남긴 조언이다.

탁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종료를 하루 앞둔 이날 페이스북에 ‘신임 의전비서관, 행사기획비서관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탁 비서관은 “미국은 퇴임하는 대통령이 새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는 전통이 있다고 들었다. ‘결단의 책상’이라고 불리는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이임 대통령이 편지를 두고 떠나면 새 대통령은 그 편지를 읽는 것으로 집무를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도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비서관이 새로 자리를 맡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두고 가는 전통을 만들고 싶었다”며 “그러나 청와대의 역사가 단절되면서 그렇게 하기 어려워져 몇 가지 얘기를 두고 떠나는 것”이라며 글을 남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우선 탁 비서관은 의전비서관이 가져야할 첫 번째 덕목으로 ‘애정’을 꼽았다. 탁 비서관은 “가까이 모시는 대통령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저 건너편의 사람들까지 애정을 가져야한다”며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졌든, 직을 맡는 순간부터는 국가적 입장이 우선이 된다”고 말했다.

탁 비서관은 “저는 국가행사나 기념식 등을 준비하며 이 일이 ‘제사’와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사이가 좋지 않고, 밉고, 싫어도 제사상 앞에서 가족은 억지로 참고 예를 다하려 한다. 그 자리에서 화해도, 이해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행사는 극단의 국민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 어제까지 싸우던 여야도, 이해가 다른 각 부처도, 세대도, 성별도 상관없이 모인다”며 “그 순간 만큼은 서로 입장이 다르더라도 싸우지 않도록 행사의 내용과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주제와 이야기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백서 발간 기념 국정과제위원회 초청 오찬에 참석하며 탁현민 의전비서관에게 보고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백서 발간 기념 국정과제위원회 초청 오찬에 참석하며 탁현민 의전비서관에게 보고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탁 비서관은 두번째로 ‘자신보다 젊고 어린 사람에게 배우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전비서관실에서 함께 근무한 20대 직원을 거론하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내가 무심했던 부분을 지적하고, 내가 갖지못한 감성을 드러내는 일이 많았다”며 “그 중에는 그럴듯 하지만 쓸모없는 것도 많았지만, 내 사고의 틀이 부서지는 경험을 하게 해준일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면, 조금은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나보다 어린 사람, 예의없고, 삐딱한 사람과 함께 일하라”며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탁 비서관은 세번째로 “(지난 일은) 잊어버려야 한다”며 “대통령 재임 기간 1800개가량의 행사를 치러야 한다”며 “실수가 없을 수 없고 때론 실패도 경험하게 된다. 이번에 잘못했으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했다.

탁 비서관은 마지막 조언으로 “버티고 고집을 부리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 행사에는 민원이 없을 리 없다. 애초의 기획의도가 흔들릴 수 있는 민원들”이라며 “이를 못 버티고 수용하면 잠시 고맙다는 말을 들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색하고 적절치 않은 순서나 내용이 들어오면 국민들도 알게 된다. 하나의 전례가 되어 계속 요구를 받게된다”며 “버티고 고집을 부리는 게 국민을 위한 길이고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탁 비서관은 “모두를 설득하고, 모두를 이해시키거나 감동시킬 수는 없지만 그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며 “감동은 대상에 대한 애정과 디테일이 만났을 때 가능하다. 음악 하나를 고를 때도 신중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그는 “대통령 입장음악의 중요성을 잊지 말라. 이전까지 대통령들은 ‘위풍당당 행진곡’ 같은 영국 왕조를 연상케 하는 곡들로 민주국가 대통령을 우습게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탁 비서관은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또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받아들여야 한다”며 “탈출 버튼을 늘 옆에 두시라. 건투를 빈다”며 글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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