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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우크라 선전…'재블린' 말고 또 있었다, 러 괴롭힌 이 전략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2022년 3월 20일(현지시간), 추궈청(邱國正) 대만 국방부장(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자국 전장의 특수성과 비대칭전(asymmetric warfare) 개념을 활용해 저항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칭전은 수단ㆍ장소ㆍ방법 등의 측면에서 철저하게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전쟁수행 방식이다.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이지움 근처 마을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이지움은 이번 전쟁의 격전지 중 한 곳이였다. EPA=연합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이지움 근처 마을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이지움은 이번 전쟁의 격전지 중 한 곳이였다. EPA=연합

전쟁에서는 ‘강자’가 당연히 유리하다. 하지만, ‘약자’에게도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약자의 비대칭전 수행 노력이 강자의 과오와 연결될 경우, 대등한 협상이나 승리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강대국 프랑스ㆍ미국ㆍ중국을 상대로 연이어 승리한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비대칭성’은 군사력 운용뿐만 아니라 군사력 건설에도 중요한 고려요소다. 우선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을 비대칭적 접근방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이 ‘반 접근 지역거부(A2AD) 전략’을 구현하기 위해 ‘극초음속대함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도 사례가 될 수 있다. 최근, 호주가 미국과 협력하여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도 동일한 관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러시아가 시도한 것은 무엇이고,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 결과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는 새로운 정부가 국방혁신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對) 전차무기를 대량으로 운용

러시아 군사력의 중심은 전통적으로 전차와 장갑차다. 이는 국토의 넓이와 지형적 특성 등에 기인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을 굴복시킨 것도, 냉전체제에서 NATO의 가장 큰 위협도 소련의 ‘대규모 기계화 부대’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우크라이나군이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이러한 인식은 미국의 무기지원에 반영됐다. ‘재블린’ 대전차미사일은 2018년부터 지원목록에 포함됐다. 2021년 12월,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국경지역 집결에 대응하여 재블린 미사일 500발을 사격하며 군사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영국은 2022년 1월부터 ‘NLAW’ 단거리 대전차로켓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전쟁발발 이후, 서방국가들이 지원한 대전차무기는 ‘최소 1만 7,000발’이라고 한다. 전례가 없는 물량이다.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대량의 첨단 대전차무기를 활용하여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를 격파할 수 있었다.

최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군 전차 1대당 10발의 대전차 무기를 제공했거나, 제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지원된 ‘단거리 지대공미사일’은 러시아 지상군에 대한 공중엄호를 어렵게 함으로써 대전차무기 운용여건을 보장해줬다. 러시아 전차의 취약성, 제병협동작전 수행의 미숙함 등도 대전차무기의 효과가 극대화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2단계 작전에서는 러시아군도 전차ㆍ장갑차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전차의 방호능력이 향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계화 보병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보완책이 될 수 있으나 현실적이지 않다. 현재 병력 ‘약 20만명’은 러시아가 동원령 없이 투입할 수 있는 최대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1년 만에 부활한 미국의 ‘무기대여법’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의 범위와 속도가 획기적으로 증대할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면전’을 선포하거나, 더 나아가 ‘전술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전쟁은 새로운 차원으로 비화할 것이 자명하다.

국경 대신 도시와 교차로에 병력 배치  

러시아가 희망했던 이상적인 전투 장소는 ‘국경지역’이었을 것이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단 한 치의 땅도 빼앗길 수 없다는 자세로 국경지역에서 결전을 시도했다면 전쟁 경과는 러시아에게 훨씬 유리하게 전개됐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군 기계화부대가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을 받고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트위터 DAlperovitch 계정

러시아군 기계화부대가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을 받고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트위터 DAlperovitch 계정

우크라이나는 국경지역을 포기하는 대신, ‘도시와 교차로’를 중심으로 종심 깊게 전투력을 배치했다. 물론, 미국의 정보와 조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쟁 발발 이전부터,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도시를 중심으로 전투력을 배치했을 때만이 ‘일정기간의 저항’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2016~2017년, 이라크군 약 10만명이 모술(75만명)에 투입되어 9개월간 사상자 약 3만명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이를 ‘21세기 최대의 시가전’이라고 불렀다. 동일한 기준으로 키이우(200만명) 시가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상자를 추정하면, 약 9만명에 달한다. 러시아군이 이러한 사상자 부담을 감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러시아군은 ‘화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동남부 지역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2단계 작전 초기에 목표로 했던 소규모 도시들마저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다. 마리우폴에서는 우크라이나군 수백명이 아조프스탈 제철소 지하에서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시가지 전투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대안을 찾을 수 없다면, 2단계 작전의 결과도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동전을 거부하고 소모전을 강요

전쟁 초기, 러시아군은 2008년 조지아 전쟁을 모델로 ‘기동전’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러시아군은 기습적으로 국경을 넘어 5일 동안 약 100㎞를 진출했다. 러시아군이 수도 트빌리시 전방 50㎞까지 진출하자, 조지아군은 저항의지를 상실하고 항복에 가까운 휴전조건에 동의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저항세력이 끝까지 버티고 있는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 로이터=연합

우크라이나 저항세력이 끝까지 버티고 있는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 로이터=연합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기습’이 불가능했다. 특히, 미국은 개전 예상일자까지 공개하며 러시아를 압박한 바 있다. 기습효과의 상실은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가 심리적 충격을 이겨내고,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제공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우크라이나 선택한 것은 ‘소모전’이었다. 4차 중동전쟁 초기,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 동쪽 교두보에 대전차무기와 지대공미사일을 집중 배치했다. 그리고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 전차를 대전차 화망으로 격멸한 것과 유사하다. 더욱이, 지휘체계의 경직성과 준비 부족 등은 러시아군의 피해를 더욱 가중시켰다.

러시아가 2단계 작전에 돌입하는 시점을 전후하여, 서방국가들이 전차ㆍ장갑차ㆍ화포ㆍ헬기 등 공격무기를 지원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4월 28일(현지시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지 못할 만큼 약해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도 장기 소모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변국 위협 비대칭적 대응 모색해야

‘약자’가 ‘강자’에 맞서 ‘비대칭전’을 계획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실행은 결코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 국민들의 저항의지, 서방국가들의 지원 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도 많은 인적ㆍ물적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첫 항모인 랴오닝함의 야간 작전 모습. 중국은 최근 해공군력을 크게 키우고 있다. 한국은 이에 맞서 비대칭적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화=연합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첫 항모인 랴오닝함의 야간 작전 모습. 중국은 최근 해공군력을 크게 키우고 있다. 한국은 이에 맞서 비대칭적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화=연합

또한, 전쟁의 ‘상대성’에 주목해야 한다. 전쟁은 적대적인 의지가 강렬하게 충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 2위, 우크라이나 22위라는 군사력 순위는 전쟁의 본질을 오도할 수 있다. 발표 기관인 ‘Global Firepower’는 민간단체이고, 군사력의 질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단체는 군사력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그리고 기존의 국방개혁 과정에서 ‘적에 대한 연구’와 ‘비대칭적 접근’을 소홀히 한 측면이 없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첨단 군사력도 위협의 특성에 최적화했을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국 위협에 대해서는 철저한 ‘비대칭적 관점’에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전장의 실상보다 명분과 자존심을 앞세운 군사력 건설은 국가 안보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걸프전쟁(1991년)과 이라크 전쟁(2003년)은 한국의 국방개혁(2006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로운 정부를 포함한 향후 10~20년의 국방혁신에 방향성을 제공할 것이다. 보다 폭넓고, 깊이 있는 시각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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