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연도, 스타도 많았던 70년대 고교 야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시절 야구

그시절 야구

그 시절 우리는 미쳤다: 1970년대 고교야구

최홍섭 지음, W미디어

"1라운드는 누구누구, 2라운드는 누구누구…." 해마다 가을 봉황대기가 끝나면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는 바빠진다. '내년 프로 유망주가 누구냐'를 두고 팬들끼리 모의지명까지 하는데, 1년 뒤에 보면 적중률이 상당히 높다. 출범 40년이 된 프로야구에 밀려 인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실수와 역전이 쏟아지는 고교야구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묘한 매력으로 야구팬에 어필한다.

『그 시절 우리는 미쳤다: 1970년대 고교야구』는 이런 고교야구의 ‘리즈시절’을 생생하게 재조명한다. 까까머리 최동원과 선동열이 묵직한 공으로 마운드를 호령하고, 이만수와 김성한이 친 타구가 서울야구장(동대문야구장) 하늘에 홈런 궤적을 그리는가 하면, 지방팀이 서울에 오면 숙소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신문에 실리던 당시 고교야구는 요즘의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능가하는 ‘국민 비타민’이었다.

지난해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와 청주고의 경기 장면. [중앙포토]

지난해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와 청주고의 경기 장면. [중앙포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팬이라는 경북고의 1971년 전관왕(全冠王) 신화와 군산상고를 '역전의 명수'로 만든 1972년의 환희, 그리고 한해 준우승만 4번 한 인천고의 ‘1979년 눈물’은 경기를 뛴 선수와 지켜본 사람들의 삶에 그대로 녹아 평생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고교야구 기록과 팀별 타순을 줄줄이 꿰던 저자는 김봉연·김시진·이순철·박노준 등 지금도 팬들에게 친숙한 올드 스타들의 활약상과 당시 인터뷰를 몰입감 있게 소개한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란 말을 입증하듯, 야구에 얽힌 다양한 삶의 궤적을 추적했다. 야구계에서 ‘공부의 신’으로 불린 양상문과 야구를 안 했으면 국어 선생님이 됐을 ‘문학도 성준’의 이력을 소개하고, 홈런왕 김봉연이 “최동원과 선동열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한 바 있는 경북고 에이스 남우식이 기업 CEO로 거듭난 사연 등을 전한다. 뺨까지 맞아가면서도 장효조와 최동원을 신앙으로 이끈 ‘전도사 이만수’ 스토리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1970년대 역전의 명수였던 군산상고 선수의 경기 모습. [중앙포토]

1970년대 역전의 명수였던 군산상고 선수의 경기 모습. [중앙포토]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1972년 황금사자기를 우승한 군산상고가 35사단 지프차로군산에서 카퍼레이드를 했을 때 환영 인파가 얼마나 됐을까? 당시 인구가 12만 명이었는데 7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경북고는 우승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나중엔 2군사령부에서 지프차 대여에 난색을 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랬으니 그때 그 시절의 고교야구는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스포츠”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