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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무장관 스스로 살 집 마련…국방장관은 월세 내고 군주택 [공관 대수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백악관 집무실 바깥으로 나서고 있다.[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백악관 집무실 바깥으로 나서고 있다.[AFP=연합뉴스]

미국은 한국보다 고위 공직자에게 공관을 제공하는 데 인색하다. 연방정부 고위직 가운데는 대통령과 부통령 정도만 관저가 제공된다. 권력 승계 서열 3위인 하원의장과 5위 국무장관을 포함해 최고위 공직자들 대부분이 거처를 직접 마련해야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군복을 입는 군인 외에는 워싱턴에서 대통령을 제외하고 공무원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오래된 전통은 없다"면서 "부통령도 1974년에야 처음으로 현재의 해군 관측소를 관저로 사용하게 됐다"고 전했다.

美 대통령, 백악관과 사저 오가며 생활

미국 대통령은 가족과 함께 백악관에 거주한다. 백악관은 본관에 주거 공간, 서쪽 건물인 웨스트 윙에 집무실을 뒀다. 주 중에는 백악관에서, 주말엔 당선 전 살던 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대통령이 꽤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주말마다 델라웨어주 윌밍턴 사저나 레호보스 해변에 있는 별장에 간다. 지난해 8월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델라웨어에 너무 자주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젠 사키 대변인은 기자에게 "당신도 집에 가는 것 좋아하지 않냐. 대통령도 그렇다. 그도 사람"이라고 응수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임기 중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이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자주 갔다. 두 곳 모두 자신이 소유한 상업시설이면서 사저로 사용하는 곳이다.

한국 대통령처럼 당선 전 살던 집을 처분하거나 발걸음을 뚝 끊고 5년 임기 내내 청와대를 전셋집처럼 사용하는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사저에 머무는 시간에 대한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델라웨어 집에 드나든 방문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한 비판이 있다.

미국 대통령은 집이나 자주 이용하는 휴양지 등을 '여름 백악관' 등으로 정하고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비밀경호국 요원 등이 머물 시설을 구비하고, 보안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국가가 지원한다.

부통령은 워싱턴DC에 있는 해군 관측소를 공관으로 사용한다. 부통령 관저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을 계기로 도입됐다. 개인 집에 사는 부통령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이면서다.

국무장관도 살 집 스스로 마련해야

국무장관은 스스로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2018년 취임 후 살 곳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남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워싱턴 DC 안에 있는 군 주택 단지 '포토맥 힐'에 있는 장성용 주택을 임대해 달라고 미 해군에 요청했는데, 시민단체인 아메리칸 오버사이트가 입수한 자료를 통해 이를 폭로했다.

자료에 따르면 미 해군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군 주택 임대를 허락할 근거가 없고, 정부 예산에 손실을 초래할 수 있으며, 입주 대기 중인 군인들에게 불공정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NYT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과 가족은 결국 버지니아주 포트 마이어 육군 기지 안에 있는 군 주택에 집을 얻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군복을 입는 군인은 법에 따라 주택을 공급받을 자격이 있지만, 대통령과 부통령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또는 구체적으로 허가 받지 않은 민간인 공무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국방장관, 월세 내고 군 주택 사용

국방장관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지만, 예외적으로 워싱턴DC 내 군인용 주택단지에 입주할 수 있는 특혜를 받는다. 하지만 장관이 직접 월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한국 장관의 공관 운영 방식과는 다르다. 단 월세가 시장 가격보다는 월등히 싸다.

2018년 NYT는 연봉 20만 달러(약 2억 2000만원)를 받는 짐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이 매달 월세를 3383달러(약 420만원) 냈다고 전했다.

승계 서열 3위, 하원의장도 공관 없어 

권력 승계 서열 3위인 미국 하원의장도 공관이 없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워싱턴DC 고급 주택가인 조지타운에 위치한 부부 소유 아파트에 거주한다.

펠로시 전임자인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은 회기 중에는 의회 내 사무실에서 간이침대를 펴고 숙식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스콘신주가 지역구인 라이언 전 의장은 2015년 CNN 인터뷰에서 "(워싱턴에서는) 일만 한다. 난 여기에 살지 않는다"며 아파트조차 얻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장관이나 국방부 장관에게 공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는 오·만찬 등 외빈 접대다. 그런데 미국 국무장관은 외빈 접대나 만찬 등 행사는 국무부 청사 내 '외교 리셉션 룸'을 활용한다.

폼페이오 전 장관과 부인 수전 폼페이오는 2018년부터 코로나19가 퍼지기 직전인 2020년 3월까지 이곳에서 고급 만찬을 자주 주최했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사적 이익을 위해 공금을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비판을 일부 언론이 제기했다.

장관이나 고위 공직자가 업무상 만찬을 주최해야 할 경우에는 백악관 바로 앞 대통령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를 비롯한 연방 정부 시설을 이용한다.

국무장관 공관, 시도했다 실패 

미국도 국무장관에게 공관을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패했다. AP통신에 따르면 1987년 상원 외교위원회는 국무장관 공관 설치 입법안을 8대 7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안도 공관을 세금으로 장만하는 게 아니라 민간 모금으로 충당하자고 제안했다. 국무장관이 취임하면 자택에 통신 보안 장비를 설치하고, 사임하면 떼어내는 비용이 낭비라는 주장이 추진 근거였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권력자에게 민간이 기부금을 대는 것은 옳지 않고, 국방장관 등 다른 장관들이 너도나도 공관을 원할 것이라는 등 이유로 반대했다.

기존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내놓은 수정 법안은 민간 기부금을 단체당 1000달러로 제한하고, 가구 등 내부 단장은 국무장관 개인 비용으로 하며, 공무원이 관리에 투입되지 않을 것, 면적 및 위치 제한 등 각종 제약을 내걸었다. 결국 모든 안이 무산됐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매사추세츠 등 5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는 주지사 공관을 운영한다. 역사적인 건물을 공관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공공 소유라는 인식 때문에 정기적으로 주민들에게 공관을 개방하기도 한다.

미국이 공관에 인색한 이유

그렇다면 미국이 고위 공직자 공관에 인색한 이유는 뭘까. 대통령 역사학자인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2018년 NYT 인터뷰에서 정부 지도자들은 그들이 섬기는 국민과 계속 연결돼 있도록 하는 것이 대중의 더 큰 이익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우리 위에 앉아있는 왕족들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나라"라면서 "우리는 지도자들이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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