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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별기고

수술 시급한 교육감 선거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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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오는 6월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함께 시·도 교육감 선거를 치른다.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위한 모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이 금지돼 있어서 같은 성향의 후보가 난립할 경우 표가 분산돼 경쟁 진영에 교육감 자리를 내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2007년 부산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도입된 교육감 직선 사례를 보면 진보 진영은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를 중심으로 후보가 단일화됐다. 반면에 보수 진영은 다수 후보가 다투며 결과적으로 진보 후보가 당선된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진보 진영의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그랬다. 당시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우 교육감 직선제는 대의정치 정신에도 맞지 않았다. 대다수 국민은 보수 성향의 단체장을 뽑았는데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진영의 분열로 진보 성향 후보가 선출됐다. 불합리한 선거 제도 때문이었다.

헌법 ‘정치 중립성’ 조항 뜻 왜곡
교육감만 정당인 공천할 수 없어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분리 초래
6월 선거 앞두고 제도 개선해야

이런 민의 왜곡 사례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보수 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만약 주요 정당이 교육감 후보를 공천하는 제도가 있다면 이런 후보 단일화는 굳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감 선거에는 왜 정당공천을 못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헌법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개념을 오해해 하위법을 엉터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헌법 31조 4항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교육이 정치적·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현행 교육감 선거제도는 이 조항을 정당인이 교육감을 맡으면 안 된다는 뜻으로 엉뚱하게 해석했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교육 정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정당인이 될 수 있다. 시·도 교육 정책에 관한 각종 조례와 예산을 담당하는 시·도 광역의원도 정당인이 될 수 있다. 교육 정책에 관한 중요 인사들 모두 정당인이 가능한데 유독 교육감은 정당인이 맡으면 안 된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외국의 경우 정당인은 교육 책임자가 안 된다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대부분 국가에서 정당 소속인 지자체장이 지방교육도 담당한다. 일본은 현(縣) 지사가 교육위원을 임명하고 교육위원이 교육감을 호선한다. 영국·독일·핀란드 등은 지자체장이 교육도 책임진다. 미국은 대부분 주지사가 교육도 책임지고, 교육감 직선제는 14개 주에서만 실시한다.

이번에 교육감 선거제도를 포함해 지방교육 자치제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와 지방교육자치가 엄격하게 분리돼 있다. 지자체장은 교육에 지원은 할 수 있으나 권한과 책임은 교육감이 쥐고 있다. 주민의 최대 관심사는 초·중·고 교육인데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은 내 업무로 여기지 않으니 책임의식이 약하다. 교육자치가 제대로 되려면 재원 조달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교육감이 지자체장의 도움 없이는 사업 추진이 어렵다. 과거 무상급식 재원부담을 둘러싼 교육감과 지자체장의 갈등이 좋은 사례다.

따라서 지방자치와 지방교육자치를 통합해 지자체가 교육도 함께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교육감은 교육 전문가 중에서 광역단체장이 광역의회의 동의를 얻어 4년 임기로 임명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다. 시·도지사의 러닝메이트로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교육 전문가가 정당 지원도 없이 개인적으로 시·도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직접 선거를 치르니 부작용이 크다. 상당수 교육감이 불법 선거와 선거자금 조달 과정의 비리로 임기를 못 마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방자치와 지방교육자치를 통합하면 지자체장의 교육에 대한 책임의식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 국민의 높은 교육열을 의식해 경쟁적으로 교육 투자를 늘릴 테니 공교육은 한층 충실해질 것이다.

선거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교육감 후보 단일화 운동을 추진할 일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교육감 선거 제도를 수술해야 한다. 물론 6월 1일 선거를 앞두고 근본적 개혁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지방교육자치법 24조 1항(‘과거 1년 이내에 정당인인자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을 삭제해 정당 공천을 허용할 것을 제안한다.

교육감 정당공천 허용 여부는 쟁점이 분명해 토론에 많은 시일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법 개정도 간단해 정치권이 의지만 있다면 이번 선거부터 적용할 수 있다. 비합리적인 교육감 선거제도를 이번에는 반드시 바로 잡길 바란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