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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빌드업 축구, 최종예선 무패로 화룡점정 이룰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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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파울루 벤투 감독(맨 왼쪽)은 한국축구대표팀의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뤄냈다. 중앙포토

파울루 벤투 감독(맨 왼쪽)은 한국축구대표팀의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뤄냈다. 중앙포토

 “2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대한축구협회 최고위급 관계자와 만난 자리였다고 해요.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축구대표팀 감독이 ‘단조로운 전술’ 지적에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벤투 감독이 말했다더군요. ‘상대 전술이나 선수 구성에 맞춰 포메이션을 손쉽게 바꾸는 한국 지도자들을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 확실한 내 것이 없으니 상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닌가’라고요. 그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할 순 없지만, (월드컵 본선행이라는) 결과를 낸 뚝심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축구대표팀에 몸담았던 한 지도자가 밝힌 벤투 감독 관련 일화다. 벤투호 운용 철학이 선명히 드러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축구, 이 한 가지 화두로 벤투 감독은 한국축구의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행 금자탑을 쌓았다.

축구대표팀은 오는 29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UAE와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0차전을 치른다.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확보했지만 조 1위 수성을 위해, 다음달 2일 본선 조 추첨식에서 보다 나은 조 편성을 받기 위해 승점 3점을 추가해야한다.

이란전 승리 직후 주장 손흥민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는 파울루 벤투 감독. [연합뉴스]

이란전 승리 직후 주장 손흥민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는 파울루 벤투 감독. [연합뉴스]

축구대표팀 분위기는 밝다. 지난 2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 홈 9차전에서 6만4375명 만원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2-0으로 완승을 거두며 포효했다. 2011년 이후 11년간 이어 온 이란전 무패(7경기 3무4패) 고리도 끊어냈다.

승장 벤투 감독도 주목 받았다. 역대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을 통틀어 단일 재임 기간 최다승(28승) 기록을 썼고, 홈 연속 무패 행진도 20경기(16승4무)로 늘렸다. 2018년 8월 부임 이후 써내려가고 있는 최장기 재임 기록(3년 7개월)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변이 없는 한 카타르월드컵 본선까지 임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빌드업 위주의 전술을 한국 축구에 도입한 주인공이다.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감독은 빌드업 위주의 전술을 한국 축구에 도입한 주인공이다. [연합뉴스]

벤투호 성공 방정식의 전술적 뿌리는 4-2-3-1(4-3-3)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빌드업(build-up) 축구다. 최후방에서부터 패스워크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며 볼 점유율을 높여 흐름을 지배한다. 벤투 감독이 앞서 스포르팅(포르투갈), 크루제이루(브라질), 포르투갈대표팀, 올림피아코스(그리스)에서 지휘봉을 잡을 때도 같은 축구를 했다.

대표팀 운용 철학은 단순명료하다. 선수 선발은 철저히 전술에 맞춘다. 일찌감치 손흥민(30·토트넘) 위주의 선발 라인업을 고정했다. 빌드업 축구의 기반인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지난 4년간 포메이션과 선수 구성에 변화가 거의 없다보니 ‘벤투호 전술은 단조롭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플랜B가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해 3월 한일전 참패(0-3) 직후엔 사령탑 경질설이 나돌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맨 오른쪽)은 손흥민의 공격력을 극대화해 대표팀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감독(맨 오른쪽)은 손흥민의 공격력을 극대화해 대표팀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연합뉴스]

벤투 감독은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 무대에 접어든 이후에도 전술 기조를 유지했다. 대신 주포 손흥민에게 ‘변속 기어’ 역할을 맡겨 흐름을 바꿨다. 상대 수비수를 몰고 다니며 동료에게 찬스를 제공하는 ‘미끼’ 역할을 줄이고, 적극적인 슈팅과 돌파로 골 사냥에 앞장서게 했다. 손흥민의 슈팅 시도가 늘자 우리 공격진의 자신감과 상대 수비진의 긴장도가 동반 상승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란전이다. 한준희 KBS해설위원은 “(선제골로 이어진) 손흥민의 강력한 무회전성 중거리 슈팅은 왜 그가 손흥민인지 보여줬다”면서 “강호 이란을 상대로 뭔가 해내고자 한 투지가 위력적인 슈팅으로 나타난 것”이라 평가했다.

벤투 감독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12년 만의 최종예선 무패에 도전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벤투 감독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12년 만의 최종예선 무패에 도전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무대에서 벤투 감독의 마지막 도전 과제는 무패 통과다. 오는 29일 UAE전에서 무승부 이상을 거두면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이후 12년 만에 무패 달성이 가능하다. 12년 전 4승4무로 최종예선을 통과한 한국은 남아공에서도 16강에 오르며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역사를 썼다.

향후 벤투호는 한 차원 높은 도전에 나서야 한다. 조 추첨 결과를 바탕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걸맞은 수준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6월 A매치 2연전이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대한축구협회는 2002 한·일월드컵 20주년을 맞아 독일·프랑스 등 월드클래스 강팀을 국내로 불러들여 A매치 평가전을 치른다는 계획이다. 지난 2019년 브라질을 상대로 경기력 차를 절감하며 0-3 완패를 당한 벤투호의 빌드업 축구가 3년 만에 얼마나 진화했는지 확인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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