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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경제안보] 경제ㆍ통상 무기화 시대…‘정ㆍ경 분리는 옛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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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통상 기능의 외교부 이전 논의 등 경제안보를 둘러싸고 부처 간 '집안 정리'가 한창인 반면, 세계 각국은 한 발 먼저 앞서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ㆍ경 분리는 옛말"이라고 할 정도로 정치ㆍ외교적 고려가 경제 정책에 영향을 주고 이는 곧바로 안보로 직결되는 시대를 앞두고 미국, 일본, 중국은 이미 재무장을 마쳤다.

美 "통상=대외 레버리지"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부터 통상 정책을 단순한 무역, 기업 이익 확대 수단이 아닌 대외 레버리지로 활용하고 있다.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이 직접 키를 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국가경제위원회(NEC)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삼성전자 등 세계의 주요 반도체 업계를 백악관에 불러놓고 웨이퍼를 손에 든 채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통상의 경우 이를 전담하는 무역대표부(USTR)라는 독립 조직을 마련했지만 갈수록 USTR의 존재감은 줄어들고 경제안보를 총괄하는 백악관의 영향력은 강화되고 있다. 통상 전담 독립형 조직은 경제 규모 1위인 미국에서나 가능한 모델인데 USTR마저도 백악관, 국무부가 사실상 주도하는 경제안보 드라이브에 사실상 종속돼 있다는 평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관련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든 모습.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관련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든 모습. AP=연합뉴스.

컨트럴 타워 만든 日...일대일로 뻗는 中

일본은 지난 2020년 국가안전보장국(NSS) 내에 경제 반을 신설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엔 기시다 내각 출범과 함께 장관급의 경제안보 담당 상을 새로 임명했다. 조만간 경제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법안을 제정해 내각에 경제안보 컨트럴타워 기능을 할 경제안보담당실을 새로 마련하고 사이버 공격에서 주요 인프라 산업을 보호하며 민관 협력으로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중국도 일대일로(一帶一路ㆍ중국의 육ㆍ해상 실크로드 전략)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등 국가를 중국의 영향권 아래 두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도 과거의 개혁ㆍ개방 중심 통상정책에서 벗어나 자국의 경제 자립도를 강화하고 중국 경제의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총리 관저에서 취재진에게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총리 관저에서 취재진에게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산업통상ㆍ외교통상ㆍ독립형...韓 방향은?

최근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외교부로의 이전 논의가 불붙은 '통상 조직'의 경우 세계 각국마다 제각각이다. 기본적으로 자국 사정에 맞춘 모델을 택하고 필요에 따라 조직 개편도 실시하고 있다. 크게 나눠 산업을 담당하는 부서가 통상 기능을 맡는 '산업통상형', 외교부가 통상을 하는 '외교통상형', 미국처럼 아예 USTR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두는 '독립형'으로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OECD 10대 교역 대국 통상 조직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OECD 10대 교역 대국 통상 조직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상 조직과 교섭권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이전됐는데, 외교부는 "통상ㆍ외교를 함께 다루는 게 국제 추세"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당시 한국의 통상 조직은 외교통상형에서 산업통상형으로 바뀐 셈인데, 이런 경우는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교역 규모 상위 10개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정헌주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제 논리 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등 보다 포괄적인 가치까지 대외 정책 결정에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시대"라며 "정부는 지난해 요소수 사태, 올해 대러 제재 엇박자 등 최근 경제안보 대응에서 문제점을 복기해보고, 차기 정부에선 보다 거시적ㆍ정무적 판단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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