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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시간 일하다 쓰러진 체르노빌 원전 직원…러 "일부 교체"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 원전에서 인질로 붙잡힌 채 강제 노동을 해온 직원 211명 중 일부가 풀려났다고 20일(현지시간)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군이 체르노빌 원전을 점령한 지난달 24일 이후 직원의 교대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부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로이터=뉴스1]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부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로이터=뉴스1]

외신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 정부는 600여 시간동안 연속 근무를 하던 체르노빌 원전 직원 중 일부가 집으로 돌아갔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했다.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극도로 힘든 상황에서 중요한 관리 업무를 훌륭히 수행해온 이들은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 한다"며 "남은 직원들도 빨리 귀가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현재 풀려난 직원은 64명, 교체 투입된 직원은 46명이라고 WP는 전했다.

IAEA가 체르노빌 원전 직원들 중 일부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트위터 캡처]

IAEA가 체르노빌 원전 직원들 중 일부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트위터 캡처]

앞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인 지난달 24일 체르노빌 원전을 장악한 뒤, 당시 원전 근무 중이던 211명의 직원과 경비원을 억류한채 지금껏 쉼없이 강제 노동을 시켰다. 직원들은 3주 넘게 원전에 갇힌채 밤낮없이 전력 전송 수준,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내부 온도 등을 관리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직원들은 기계 앞 간이 의자나 옷더미들 위에서 쪽잠을 자며 업무를 계속해왔다. 러시아군은 이들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발렌틴 헤이코 체르노빌 원전 감독자는 “장기간 노동과 감시로, 직원들의 정신력마저 악화되기 시작했다”며 “일부 기술자들은 러시아 탱크를 뚫고라도 이곳을 벗어나겠다 난동을 부렸다”고 전했다.

직원들에게 공급되는 식단은 죽과 통조림 등이 전부였다. 요리를 담당하던 70대 요리사가 탈진으로 쓰러지자 이마저도 챙기기 어려웠다. 직원들 중 일부는 갑상선이나 고혈압 등 지병을 앓는 상황이었다. 러시아군은 직원들에게 '1분 통화'만을 허락했는데, 대다수 직원들은 이때 가족들에게 극도의 피로, 어지러움, 두통, 메스꺼움 등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르노빌 원전은 러시아군이 지난달 24일 점령한 이후 폐기물 관리 시설에 대한 전력 공급이 끊기는 등 안전 위험이 제기돼 왔다. 우크라이나 국가 원자력 규제 감독기관(SNRIU)은 19일 “직원들의 심리적·신체적 피로도가 높아 원전 유지·보수 작업의 일부가 정상적으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5월 체르노빌 원전 직원들이 시설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5월 체르노빌 원전 직원들이 시설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AP통신은 원전 책임자들이 러시아군과 어떤 합의를 통해 교대 근무에 합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한편, 체르노빌 원전은 1986년 세계 최악의 원전 사고로 폐쇄된 발전소다. 사고 이후 발전소에 시민트 구조물을 덮어 방사능 유출을 막고, 반경 30㎞ 이내 민간인 접근을 통제해왔다. 2000년 들어 완전히 해체됐지만 폐기물이 남아 원전 직원들이 인근 도시인 슬라보티츠에서 기차로 출퇴근하며 교대로 관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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