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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 그림자를 자진 소환한 키움, 강정호 복귀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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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KBO 리그 복귀를 시도하면서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인 강정호. [뉴스1]

2020년 6월 KBO 리그 복귀를 시도하면서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인 강정호. [뉴스1]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가 또 논란의 중심에 섰다. 키움 구단은 지난 18일 "내야수 강정호와 KBO리그 최저 연봉인 3000만원에 선수 계약을 했다"며 "KBO에 강정호의 임의탈퇴 해지 복귀 승인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두 번째 시도다. 키움은 2020년 6월 강정호의 복귀를 추진하다 여론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물러났다. 1년 8개월 만에 슬그머니 다시 강정호를 불러들이면서 "고형욱 단장이 영입을 주도했다"고 강조했다. 고 단장도 이례적으로 전면에 나서 "40년 넘게 야구인으로 살아온 선배로서 강정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내가 대표이사께 말씀드렸고, 허락을 받아 추진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야구 관계자들은 이런 설명에 일제히 헛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단장 선에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구단 일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다"며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도 다시 추진한 걸 보면, 고 단장 위에 계신 분의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강정호는 올해 KBO리그에서 뛸 수 없다. 팀 훈련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 파이러츠 소속이던 2016년 12월 서울에서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낸 탓이다. 그 여파로 KBO 상벌위원회로부터 1년 실격과 봉사활동 300시간 징계를 받았다. 역대 음주운전 관련 징계 중 가장 무겁다.

음주운전 적발 뒤 징계를 마치고 복귀한 선수가 없는 건 아니다. 강정호가 이들보다 더 큰 비난을 받는 이유는 2009년,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드러나서다. 마지막 적발 때는 사고를 내고 달아난 뒤 운전자 바꿔치기까지 시도하다 들통났다. 당시 공개된 폐쇄회로(CC) TV 영상에는 술 취한 강정호가 도로 한복판을 위험하게 질주하다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명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다. 음주운전 적발만으로도 잘못이지만, 그 내용과 후속 조처도 최악이었다.

그런데도 키움은 "팀이 어려울 때 중심을 잡아 준 선수라 후회 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해주고 싶었다"며 다시 강정호 영입을 강행했다. 10년 프랜차이즈 스타 박병호(KT 위즈)는 다른 팀으로 보내놓고, 갑작스럽게 '옛정'을 운운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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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고 지난해 4월 출소한 이장석 전 키움 대표이사. [연합뉴스]

횡령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고 지난해 4월 출소한 이장석 전 키움 대표이사. [연합뉴스]

키움은 10개 구단 중 유일한 자립형 야구 기업이다. 구단이 운영을 잘못해도 책임을 묻는 모기업이 없다.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단 고유의 특성인데, 키움은 이를 자주 악용한다. 유례를 찾기 힘든 물의를 계속 일으키고, 외부엔 거짓 해명으로 일관한다. 세상이 한목소리로 손가락질해도, 입을 꾹 닫고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키움은 최근 부장검사 출신 위재민(64·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구단 수익 창출에 사활을 거는 구단이 느닷없이 변호사를 수장으로 영입하자 그 배경에 물음표가 붙었다. 일부에선 "'법망'을 능숙하게 피해 가는 '편법 운영'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고 수군댔다. 키움 구단은 억측으로 끝날 수 있던 이 의혹에 단 2주 만에 불을 붙였다.

프로 스포츠는 팬 사랑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른바 '국민 정서법'이 강한 영향을 미치고,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가 요구된다. 세상은 그렇게 달라지고 있는데, 키움 구단만 다시 과거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새 대표를 앞세워 환골탈태하기는커녕, 다시 야구계에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이름을 소환했다.

무모한 키움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KBO는 키움 구단이 낸 강정호 임의탈퇴 해지 복귀 요청을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 KBO 관계자는 "선수 계약과 임의탈퇴 해지는 아직 둘 다 신청 상태로 남아 있다. 내부적으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을 받는 사안인 만큼,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며 "여러 문제의 소지를 신중하게 검토한 뒤 임의탈퇴 해지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임의탈퇴 해지 신청이 KBO의 승인 거부로 무산된 선수는 아직 한 명도 없다. KBO 관계자는 "그동안은 이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의탈퇴 해지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키움이 넘어야 할 장벽은 하나 더 있다. 유기 실격 선수는 실격기간 만료일 다음 날부터 복귀를 신청할 수 있지만, KBO 총재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야구규약 67조 '복귀허가' 조항에는 "총재는 선수가 제재를 받게 된 경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수의 복귀 여부를 결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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