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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핵폭탄' D-4…러 유학생·주재원, ATM 돌며 현금 확보전

중앙일보

입력

미국 등 서방의 금융제재로 러시아 금융 시장이 혼돈에 빠지며 뱅크런도 본격화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수도인 모스크바 시내의 한 백화점에 설치된 스베르뱅크 ATM기 앞에서 돈을 인출하기 위해 서 있는 시민들의 모습. [TASS=연합뉴스]

미국 등 서방의 금융제재로 러시아 금융 시장이 혼돈에 빠지며 뱅크런도 본격화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수도인 모스크바 시내의 한 백화점에 설치된 스베르뱅크 ATM기 앞에서 돈을 인출하기 위해 서 있는 시민들의 모습. [TASS=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현지 주재원으로 체류 중인 A씨는 지난 8일까지 시내에 있는 자동화기기(ATM)를 돌며 인출할 수 있는 현금을 최대한 확보해뒀다.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로 국내로부터 송금이 어려워진 데다, 비자나 마스터카드 등 미국을 기반으로 둔 카드 사용이 어려워지면서다. A씨는 “전쟁 상황이 장기화하는 걸 대비해 중국을 활용한 송금이나 웨스턴유니온처럼 금융 제재에 포함되는 않는 송금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8시(한국시간)부터 러시아를 향한 ‘금융 핵폭탄’ 조치가 시작된다. 러시아 7개 은행에 대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 배제 조치가 시행되면서다. SWIFT에서 빠지게 되면 국제 금융망을 통해 돈을 주고받을 수 없다. 한국에서 돈을 받아 생활하는 유학생이나 현지 주재원의 경우 송금 길이 막혀 어려움이 커지게 됐다.

현재 한국 정부가 금융 거래를 중단한 러시아 금융기관은 총 11곳이다. 러시아 최대은행인 스베르방크는 SWIFT에서 제외되지 않았지만,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에 올라 거래가 중단됐다. 원칙적으로는 이들 은행을 제외하면 송금이 가능하다. 다만 실제 송금에는 제약이 많다는 게 시중은행의 설명이다.

시중은행이 러시아와의 금융거래를 꺼리다 보니 제재 대상이 아닌 은행으로의 송금도 어려워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재 대상도 언제 확대될지 몰라 러시아로의 송금은 쉽지 않다”며 “고객들에게 개별적으로 송금 가능 여부 등을 확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씨티은행 등 중개은행도 송금 전 확인 절차를 강화하며, 송금한 돈이 수일 째 묶여있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루블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루블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루블화의 변동성이 커진 것도 송금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현지 법인을 두고 있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경우 중개은행을 거치지 않고 규제 대상에서 빠진 러시아 은행으로 루블화를 송금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 외환시장에서 루블화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면서 루블화 환전이 쉽지 않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재 루블화의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본점에서 환율과 환전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송금이 어려워지며 러시아 유학생과 주재원이 모인 커뮤니티에는 원화와 루블을 직거래 방식으로 환전하거나, 아직 송금이 가능한 핀테크 업체 등을 공유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다만 유학생이 많이 이용했던 핀테크 업체들도 러시아로의 송금을 속속 막고 있다. 한 소액송금업체의 대표는 "제재 리스크가 있어 선제적으로 송금을 중단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WIFT망을 이용하지 않은 웨스턴유니온을 통한 송금도 여전히 가능하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웨스트유니온에서 현재 송금을 막지 않고 있지만 현지에서 달러 수취가 어려울 수는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달러 등의 외화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9일부터 루블화의 외화 환전을 6개월간 중단하고, 자국 은행에 개설한 외화계좌의 현금 인출 한도액을 최대 1만 달러로 제한하기로 했다.

정부는 유학생이나 주재원이 송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금융애로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해외 송금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찾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이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나서 송금 우회로를 모색하는 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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