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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피아니시모의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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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큰 무대에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동그마니 놓여 있다. 검은색 수트를 입은 피아니스트가 홀로 등장하여,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넘나들며 연주를 한다. 한편 외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풍경이다. 그렇지만 객석을 빼곡하게 메운 2500여 명의 관객이 그 한 사람을 주시하고 있다. 최근 내한한 랑랑(왼쪽 사진)과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피아노 독주회의 모습이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현란한 음향도 오페라의 화려한 무대도 없지만. 긴장된 공기 속을 뚫고 진동하는 피아노 소리는 청중을 열광의 세계로 이끌었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찾는 듯한 피아니시모의 아주 조용한 소리의 흐름 속에서 피아노가 보여주는 절대음악의 미학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난달 23일 열린 랑랑의 피아노 독주회 메인 프로그램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클래식 피아노계의 슈퍼스타’로 명성이 자자한 랑랑은 과장된 제스처와 자기도취적 연주에 대해 비판적 평가도 함께 받아왔기에, 바로크적 대위와 변주의 특성이 집약된 이 곡을 그가 어떻게 해석할지는 세간의 관심사였다.

‘랑랑식’ 골드베르크 변주곡
짐머만의 폴란드적 낭만성
피아노가 선사한 절대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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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연주회에서 그는 낭만적인 감정의 군더더기를 걷어낸 음색으로 랑랑식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려주었다. 대위적 짜임새에서 각 성부의 선율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랑랑은 주제 선율이 모방되어 다른 성부로 옮겨가는 흐름을 매우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마치 청각으로 느낀 소리가 구조적 건축물의 시각적 이미지로 나타나는 듯했다. 장식음을 독특하게 활용하고, 특히 베이스 선율을 강조하면서 주선율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시도를 통해, ‘아리아’에 이후 30개의 변주곡 하나하나는 익숙하게 듣던 곡과는 다른 새로운 곡으로 바뀌었다. 조용한 다이내믹에서 세밀한 음색 조절을 하였고, 그 안에서 때로는 잘 알려진 랑랑의 로맨티시즘적 제스처를 보이거나, 때로는 쇼팽의 폴로네즈를 연상시키는 신나고 리드미컬한 분위기를 끌어냈다. 이 곡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글렌 굴드의 골드변주곡’을 넘어서는, 21세기식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피아니스트 부인과 함께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브람스, 한국 동요 ‘엄마와 누나야’와 중국의 민요 ‘모리화’도 인상적이었다.

지난 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짐머만을 감상했다. 1975년 쇼팽 콩쿠르 1등을 하며 데뷔한 이후 현재까지 세계 피아니스트계의 정상을 유지한 그는 뉴욕타임스로부터 ‘그로 인해 느끼는 클래식의 영원함’이라는 극찬을 받은 연주자이다. 첫 곡으로 연주한 폴란드의 현대 작곡가 시마노프스키의 ‘프렐류드’와 ‘마주르카’는 신선했다. 폴란드적 우수를 느낄 수 있는 낭만적 선율을 낮은 다이내믹에서 풀어나가면서 ‘시마노프스키 음악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낭만적 성격 소곡의 특성을 보인 마주르카에서는 단조의 대위적 선율, 강렬한 리듬, 반음계적 선율선의 폴리포니를 뚜렷하게 드러냈고, 곡을 마무리하는 긴 공명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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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파르티타는 레가토로 연결하고 템포를 자유롭게 조절하면서 낭만적인 스타일로 연주했다. 중간에 소리가 엉키고, 주춤하는 부분도 있어서 아쉬웠지만, 지휘하는 손동작을 보이며 자신만의 음악을 이끌어가는 여유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브람스의 절대음악적 아름다움의 최고봉을 드러내는 ‘인터메초 op. 117’의 가슴을 에는 듯한 첫 선율은 담백하게 시작됐다. 전반적으로 소리는 명료하지 않았고 인터메초 특유의 우울감도 휙 지나가버리는 느낌이었지만, 브람스가 건네주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섬세한 사운드의 질감으로 표현한 점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연주한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은 과장됨이나 극적인 클라이맥스 없이 추상적인 피아노 음 자체를 전반적으로 느린 템포로 드러냈다.

랑랑과 짐머만!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두 연주자를 만나는 시간은 즐거웠다. 랑랑이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40대의 생생함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면, 노장 짐머만은 학구적인 프로그램으로 품격있는 완숙함을 보여줬다. 특히 청중이 이들로부터 느꼈던 감동은 바로 피아노를 통해 나타나는 음들의 순수한 울림에 있었다. 랑랑과 짐머만은 극도로 나지막한 피아니시모 사운드에서 완벽한 완급조절을 통해 정교한 음색의 변화를 보여주었고, 소리가 멈추고 나오는 공명된 음들의 움직임을 온전히 들려주었다. 음악적 아름다움은 오로지 음과 음의 결합, 선율과 화성과 리듬의 결합에서 오는 것이라는 한슬릭적 절대음악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던 피아노의 시간이었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