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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첫 문민 민주주의’ 실현한 김영삼과 시대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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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김대중 정부를 “첫 민주정부”였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1993년 2월 25일 제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었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을 맞이하기 위하여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장엄하고도 역사적인 선언이었다. 그 자리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고, 7000만 국내외 동포와 700만 해외동포가 지켜보고 있었다. 취임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마침내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타는 열망과 거룩한 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문대통령 3·1절 발언은 역사 왜곡
대선 앞 편 가르지 말고 통합해야

김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적으로 척결했다. 그해 8월엔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를 도입해 부정부패 소지를 막았다. 1995년 6월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해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완성했다.

필자는 또한 2017년 11월 22일 김영삼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추도사를 기억한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40여년의 민주화 여정을 거쳐 도달한 곳은 군사독재의 끝 문민정부였습니다. … 오늘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4·19혁명과 부마(釜馬)민주항쟁, 광주 민주항쟁, 6월항쟁이 역사에서 제자리를 찾았던 때가 바로 문민정부입니다. … 법과 정의에 기초한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군사독재 시대에 대한 역사적 청산도 이루어졌습니다. 군의 사조직을 척결하고 광주학살의 책임자를 법정에 세웠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김영삼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했던 문 대통령이 인제 와서 왜 다른 말을 할까. 청와대 사람들이 했다는 말이야 제대로 몰라서 그랬다고 치자. 문 대통령이 뻔히 알고도 그런 표현을 했다면 우리가 피와 눈물과 땀으로 엮어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명백히 왜곡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선을 코앞에 두고 국민 내부를 다시 한번 정파와 진영으로 갈라치기를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를 새삼스럽게 꺼내 읽고,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취임사가 당시 상황에서 시대의 징표를 정확히 읽고 시대정신을 분명하게 구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군정을 종식한 것만이 아니라 30여년에 걸친 군사정치문화를 이 땅에서 영원히 청산하는 것, 바로 그것이 당시의 움직일 수 없는 시대정신이었다.

그렇다면 20대 대선일을 앞둔 오늘의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오는 9일 선출되는 제20대 대통령이 구현해야 할 대한민국의 모습은 거짓과 위선, 불의와 불공정, 내로남불과 부정부패가 없이 안으로 하나 된 따뜻한 공동체다. 밖으로는 그 어느 나라, 그 누구를 향해서도 정의롭고 당당한 문화선진국가여야 한다고 믿는다.

선진국은 경제 등 수치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보아 한점 부끄럽지 않은 국격을 갖출 때 비로소 실현할 수 있다.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국민 내부의 통합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갈가리 찢기고 분열된 국민 내부를 조속히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오늘의 시대정신인 것이다. 늦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여러 대선후보가 국민통합과 통합정부를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통합정부를 말하면서도 거대 양당은 상대당과의 통합과 협치는 말하지 않고 있다. 배타적 통합을 부르짖을 뿐이다. 선거 후에 과연 통합의 정치가 가능할까. 국민 모두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면서 이 약속이 지켜지도록 추궁해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의 시대정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