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환율·물가 효과로 작년 1인당 국민소득 3만5168달러…체감은 '글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년간 뒷걸음질했던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해 3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진짜 실력'이라기보다는 원화 강세와 물가 상승 영향이 컸다. 오히려 국민이 체감하는 소득 수준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5168달러로 전년(3만1881달러)보다 10.3% 늘었다. 1인당 GNI가 증가한 것은 2018년(5.8%) 이후 3년 만이다. 증가 폭으론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20.9%) 이후 최대다. 환율 효과를 뺀 원화 기준 1인당 GNI(4024만7000원)는 1년 전보다 7% 증가했다.

1인당 GNI는 명목 GNI를 총인구수로 나눈 뒤 환율을 반영해 계산한다. 한 나라 국민의 생활 수준을 파악하는 지표로 쓰인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0%였다. 지난 1월 한은이 발표했던 속보치와 같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돌파한 지 4년 만에 3만5000달러를 뛰어넘은 점이 가장 눈에 띈다"며 "특히 해당 4년 중 2년이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위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썼다.

3년 만에 반등한 1인당 국민총소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3년 만에 반등한 1인당 국민총소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마냥 좋아하긴 어렵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데 경제 성장 외적인 부분도 크게 기여해서다. 원화 강세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원화 가치는 달러당 평균 1144.4원으로 1년 전보다 3% 상승(환율은 하락)했다. 그만큼 달러로 환산한 국민소득이 늘어난 것이다.

치솟는 물가도 1인당 GNI를 밀어 올린 요인이다. 이날 발표 중 눈길을 끈 것도 'GDP 디플레이터'였다. 지난해 GDP 디플레이터는 전년보다 2.3% 상승했다. 2015년(3.2%) 이후 6년 만에 가장 큰 오름폭이다. GDP 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으로, 'GDP 물가'라고 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포괄하는 가장 종합적인 물가 지수다.

최정태 한은 국민계정부장은 "지난해 1인당 GNI 증가 폭(3287달러)에서 경제 성장(실질 GDP)이 1272달러,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이 1061달러, 물가(GDP 디플레이터)가 762달러 정도 기여했다"고 말했다. 바꿔 말해 환율·물가 영향을 감안하면 국민 소득이 별로 늘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난해 실질 GNI 증가율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민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보여주는 실질 GNI 증가율은 3.5%(전년 대비)에 그쳤다. 실질 GDP 성장률(4%)에 못 미치는 수치다. 소득이 경제 규모보다 적게 늘어난 셈이다. 한은은 "국제 유가 상승으로 교역 조건이 나빠지며 실질 무역손실이 커진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6년 만에 가장 크게 오른 GDP 물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6년 만에 가장 크게 오른 GDP 물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구 효과도 1인당 GNI가 늘어난 요인으로 꼽힌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총인구(5174만5000명)는 1년 전보다 0.18%(9만1000명) 준 것으로 추산됐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인당 GNI 증가엔 인구 감소 영향도 있을 것"이라며 "똑같이 벌더라도 인구가 줄면 1인당 GNI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통계와 현실과의 간극도 크다. 1인당 GNI를 3인 가족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연간 소득은 1억2074만원(원화 기준) 정도다. 그러나 국세청에 따르면 2020년 연말정산을 한 근로소득자(1949만5000명) 중 연봉이 1억원을 넘는 사람은 전체의 4.7%인 91만여 명에 불과했다. 이는 GNI에 가계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소득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고물가도 소득 증가 효과를 갉아먹는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가계의 소비지출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인 엥겔계수는 지난해 12.86%로 21년 만에 최대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득 대비 물가가 너무 올라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1인당 GNI 4만 달러 고지를 밟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의 경우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 진입까지 평균 5년이 걸렸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4만 달러 달성에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