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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젤렌스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영국은 1940년 7월부터 1941년 5월까지 본토에서 독일 공군과 사투를 벌였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다. 히틀러는 자신만만했다. 독일의 공군 전력은 영국의 그것을 압도했다. 런던이 공습당하면 백기를 들 것이라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영국 국민은 똘똘 뭉쳐 버텼다. 이때 말더듬이였던 국왕 조지 6세는 국민을 위로하고 항전을 독려하는 명연설을 남겼다. 라디오를 통해 각 가정으로 전달된 연설은 영국을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영국의 거센 저항은 히틀러의 전쟁 구상을 뒤엉키게 했다. 그는 영국을 포기하고 주 전력을 동부 전선으로 이동시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새벽 연설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인스타그램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새벽 연설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인스타그램 캡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푸틴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속전속결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점령하려고 했으나, 제2도시인 하르키우, 흑해 연안의 거점 마리우폴도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

푸틴의 구상을 뒤틀리게 만든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한때 도주설까지 돌았던 그는 지난달 26일 SNS에서 자신이 키예프에 남아있는 것을 입증하며 항전을 촉구했다. 고무된 국민들은 레지스탕스가 되어 곳곳에서 러시아군의 진격을 멈춰세우고 있다. SNS를 통해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로 확산된 그의 영상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단결시켰을 뿐 아니라 대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이던 유럽 정상들의 태도까지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립을 표방했거나 친러시아 노선을 걷던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협력에 나섰다. 불과 얼마 전 그를 ‘정치 초보’ ‘코미디언’이라고 조롱했던 이들이 냉소를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