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러 경제 제재에 유가 100달러 돌파…에너지시장 지각변동 꿈틀

중앙일보

입력

우려가 현실이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에너지 시장에 몰고 온 후폭풍이 거세다.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를 향한 '핵폭탄'급 경제 제재에 나서며 국제 유가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수급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후 에너지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지난 28일(현지시간) 4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4.5% 오른 배럴당 95.7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4년 8월 이후 7년 6개월 만의 최고치다. 장중엔 99.1달러까지 치솟았다. 브렌트유(4월물)도 배럴당 100.99달러까지 올라 2014년 9월 이후 최고가를 경신했다.

가뜩이나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원유 수출 차질 우려가 유가 상승세에 제대로 기름을 끼얹었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이다. 전 세계 원유의 12%(하루 500만 배럴)를 생산한다. 이 물량이 줄어들면 유가는 우상향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원유 수출 감소분을 대체할 곳도 마땅치 않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의 추가 증산이 없다면 유가가 뛸 가능성이 크지만 산유국의 입장은 어정쩡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 산유국 회동에서 OPEC 대표단이 현 증산 규모(하루 40만 배럴)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초고유가 시대'가 열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제 유가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최고가(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의견도 있다. 미국 투자회사인 바이슨 인터레스트의 조시 영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러시아 제재가) 원유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를 환경을 조성했다"며 "국제 원유 수급이 제한되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선으로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치솟는 국제 유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치솟는 국제 유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직접 군사 개입 대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동참한 유럽은 더 고통스럽다. 유럽의 주력 에너지원은 천연가스(LNG)다. 천연가스는 냉·난방뿐 아니라 화학 제품·유리 등의 가공에도 쓰인다. 문제는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의 40% 이상을 공급받는 데 있다. 심지어 북마케도니아는 전량(100%)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미 예상한 시나리오지만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인 러시아로부터의 공급 길이 막히면서 '천연가스 공급 부족'이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천연가스 부족은 원유는 물론 석탄 등 대체연료 가격을 연쇄적으로 자극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부채질한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제재에 대항해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제한할 경우 유럽발 인플레이션 충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글로벌 에너지 시장 재편 가능성도 커졌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대니얼 예긴 부회장은 "러시아 제재가 각국의 원유 시장에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며 "(러시아의 SWIFT망 배제로) 원유를 구매하거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제한이 가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장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춰야 할 처지다. '구원투수'로는 미국이 떠오르고 있다. 이미 미국은 유럽의 에너지 '맷집'을 키우기 위해 최근 천연가스 등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유럽은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 연속으로 미국산 LNG의 최대 수입처가 됐다. 미국산 LNG의 수입처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2월 기준 61%로, 1년 새 24%포인트가량 늘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의 에너지 수요가 미국 등 일부 국가로 이동할 여지가 크다"며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이나 중동산 수입 등으로 에너지 수입선이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 약세 속 채산성이 맞지 않아 생산을 중단했던 미국 셰일가스 시장이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WSJ도 최근 "채산성 문제로 버려졌던 미국의 셰일가스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상현 이코노미스트는 "셰일가스 생산업체들이 탄소 중립 정책 강화 분위기 등으로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유럽의 에너지 공급원 확대 차원에서 미국 셰일 생산업체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