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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시진핑의 중국경제 새 판 짜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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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세상은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연초부터 북한이 마구 미사일을 쏘아대더니 2월의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서방의 외교적 보이콧과 편파판정 시비, 약물파동 등으로 얼룩졌다. 그리고 이젠 올림픽이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던 러시아가 마침내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서며 임인년(壬寅年) 한 해가 범상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 상황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무려 4만여 자나 되는 장문의 글이 발표돼 중화권에서 커다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4만 자 문장이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4만 자 문장이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글은 지난 1월 19일 중화권 인터넷 사이트인 류위안(留園)망에 실렸다. 저자는 민감한 내용인 만큼 ‘방주와 중국(方舟與中國)’이란 필명을 썼다. ‘시진핑 객관 평가’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내용은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가 반영돼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글에서 시진핑의 개인적인 자질 비판부터 시작해 지난 10년의 내치와 외교, 경제 등 시진핑 정책의 난맥상을 무차별 저격한다. 특히 시진핑의 운명과 관련해 올해 연임에 성공할지라도 21차 당 대회가 예정된 2027년 이전엔 ‘전면적인 실패’에 직면할 것이라는 저주도 서슴지 않는다.
반(反)시진핑 인사가 쓴 글이라는 걸 감안해야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시진핑의 중국경제 새 판 짜기 구상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경제 부문에 취하는 행동을 보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아무리 문제가 많기로서니 부동산이나 사교육 업종 등에 취하는 중국 당국의 강경한 조치는 이들 업종이 살든 죽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마윈(馬云)의 알리바바 등 민영기업 때리기도 그렇다. 많은 경우 경제 논리가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시진핑은 중국 경제를 어떻게 이끌 생각인가. 이와 관련해 필자의 해석은 매우 새로운 것으로 충분히 음미할 가치가 있다.

중국인들은 매번 새 지도자가 등장할 때마다 “어진 군주가 세상에 나면 나라가 다시 흥할 것”이란 꿈을 꾸곤 한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중국인들은 매번 새 지도자가 등장할 때마다 “어진 군주가 세상에 나면 나라가 다시 흥할 것”이란 꿈을 꾸곤 한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필자에 따르면 시진핑은 남다른 강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전략을 펼칠 때 세부적인 것에 가려 전체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경제 전략도 그렇다. 여러 정책을 펴고 있는데 마치 짙은 안개에 가려 있는 듯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시진핑이 집권 이후 추진해온 정책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짙은 안개를 뚫고 어떤 틀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세 가지 노선을 함께 추진한다는 삼로병진(三路幷進) 정책이다. 그렇다면 그 세 가지는 무언가.
필자는 제1층에 ‘청소년 관리’가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 문제는 언뜻 사회문제처럼 보이는데 그는 이를 시진핑 경제 전략의 기초라고 말한다. 시진핑은 “인생의 단추는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야 한다”며 어린 아기 때부터 사상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데 청소년의 사상을 ‘불량, 반동, 저속’으로 이끄는 건 뭔가. 연예계가 망치고 게임중독이 망치며 사교육이 망친다는 것이다. 현재 연예계와 사교육 등에 정부 단속의 광풍이 몰아치는 이유다. 사람들이 아직 이게 시진핑 경제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모를 때 제2층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외국 방문 시 자신이 읽은 해당 국가 작가의 작품을 열거하곤 해 ‘시진핑 독서 목록’이란 말이 만들어졌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외국 방문 시 자신이 읽은 해당 국가 작가의 작품을 열거하곤 해 ‘시진핑 독서 목록’이란 말이 만들어졌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2층은 민영기업 때리기다. 시진핑의 경제 정책은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는 게 아니라 아예 무너트리고 다시 세운다는 것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 당국은 민영기업 때리기와 정치 때리기를 동시에 했다. 정치적으로 언행이 부적절한 기업인을 잡아들여 혼내는 식이었다. 시진핑은 경제적 자유가 사상적 자유와 마찬가지로 정치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바로 서방이 자본주의를 중국에 들여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경제 자유화는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바로잡아야 할 건 이 모델 그 자체이지 기업인 한두 명이 아니다.
시진핑은 정치적으로 죄를 물을 수 없는 민영기업에 대해선 온갖 행정규제를 퍼부었다. 궁극적 목표는 사영기업을 집어삼키는 것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이어 제3층이 나타난다. 그건 한바탕의 권력 혁명인데 이 혁명의 대상은 재력과 권력을 둘 다 가진 금융 거물이다. 이들은 사영기업의 외투를 쓰고 배후에서 정치 실세들과 결탁해 국정에 간여할 정도로 힘이 세다. 즉 시진핑 집권의 최대 방해물이기도 하다.

중국 당국은 2015년 7월 9일 대대적인 인권 변호사 검거 작전에 돌입해 100여 명의 변호사와 인권 운동가, 시민 기자를 체포했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중국 당국은 2015년 7월 9일 대대적인 인권 변호사 검거 작전에 돌입해 100여 명의 변호사와 인권 운동가, 시민 기자를 체포했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이들을 어떻게 와해시킬 건가. 시진핑은 혼합소유제 경제 발전을 외친다. 국유자본과 비공유자본 등이 주식을 교차 보유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사실상 사영기업 합병 방안인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안방(安邦)보험과 하이난항공그룹(海航集團) 등이 국가자본으로 인수됐다. 그렇다면 이 같은 시진핑 경제의 3층 구조는 어떻게 하나의 전체로 구성되는 것일까.
시진핑의 계획은 사영기업을 때려잡아 국유기업을 확충하는 ‘신(新)국유기업’ 제도 건설에 있다. 시진핑은 중국의 경제구조를 국가 주도하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산업형태로 만들려고 한다. 자력갱생하려면 반드시 공업을 진작시켜야 한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제조업 대국을 건설하려는 이유다. 중국이 비록 제조업 대국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생산능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시진핑은 그 원인이 노동구조의 문제에 있다고 본다. 중국 청년들이 다원화된 산업에 분산돼 있고 제조업에 종사하지 않아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울 수 있는 이점이 약화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유난히 그를 띄우는 선전이 많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유난히 그를 띄우는 선전이 많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여기서 다원화된 산업이란 ‘3차 산업’을 가리킨다. 경제학에선 3차 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에 생기를 더해준다고 하지만 시진핑은 노동력의 내적 소모만을 초래한다고 본다. 중국의 3차 산업은 수출 경쟁력은 없고 오히려 서구 이데올로기가 유입되는 창구(엔터테인먼트, 금융, 문화)로 이용돼 정부의 통전(統戰) 비용만을 증가시킬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사교육은 중국 청년이 서방의 교육을 받게 하고 외국어를 배우게 하는 등 유학생과 이민자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 노동력 유실과 외화 낭비로까지 이어진다고 봤다. 중국 정부가 과감히 학원 문을 닫게 하고 영어시험을 폐지한 배경이다.
시진핑은 무릇 사회주의는 공업과 농업의 사회여야 하며 공유제의 특성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산업의 국유화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계획경제로 복귀한다기보다는 국유기업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며 그 종착점은 국유기업 간 합병을 통해 첨단 산업에서 우위를 지닌 ‘대형 중앙기업’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중국에서 2015년 이후 불고 있는 대형 국유기업 간 인수합병 바람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가을 20차 당 대회를 통해 집권 3기에 도전한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가을 20차 당 대회를 통해 집권 3기에 도전한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이런 대형 중앙기업이 바로 시진핑이 계획하는 신국유기업이다. 그러면 시진핑 경제의 청사진이 뚜렷해진다. 시진핑의 3층 경제구조는 노동력, 산업, 자본과 맞아떨어진다. 즉 오늘의 청소년은 미래의 제조업 노동자이고, 민영기업 인수합병은 산업 집중도를 높이는 일이며, 금융 거물에 대한 제재는 신국유기업의 자본을 모으는 일이다. 이런 시진핑의 경제발전 계획은 사실상 정치적 목적이 짙다. 시진핑은 시장화를 부정하기보다는 국가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 국유기업 모델’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시진핑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홍색 유전자’ 개념을 알아야 한다. 시진핑이 강조하는 건 ‘홍색 문화’가 아니라 ‘홍색 혈통’이다. 중국 공산당이 장악한 “홍색 강산은 영원히 퇴색해선 안 된다(紅色江山永不變色)”는 게 시진핑의 지론이다. 결국 시진핑 경제모델의 궁극적인 구상은 절대적 이원(二元)구조 구축이다. 국내에선 현대화 교육을 억제하고 대중의 제조업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홍색 자제들은 서방에 유학시켜 경영과 기술을 배우게 한 뒤 귀국시켜 신국유기업의 운영을 담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숙청됐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보시라이는 숙청됐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 [방주와중국 블로그 캡처]

필자에 따르면 이런 모델에서 관료는 상층 구조물이고 민중은 생산 자재를 충당하는 존재와 같다. 마치 가죽채찍을 든 감독관들이 하층 노동자들을 독촉해 사회주의 피라미드를 쌓는 것과 같다. 그리고 시진핑은 그 피라미드 꼭대기에 자리한 섭리의 눈인 ‘전시안(全視眼, All-seeing Eye)’이 되는 셈이다. 이런 모델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에겐 아름다운 꿈일지 몰라도 전체 중국 국민에겐 악몽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 같은 분석은 기존에 보지 못한 꽤 새로운 것이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중국 경제의 이면을 살피는 데 나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중화권 인터넷 사이트에 발표된 ‘시진핑 객관평가’ #4만 자로 시진핑 지도자 자질부터 내치와 외교, 경제 비판 #시진핑 경제 계획은 홍색 가족과 대중의 이원체제 구축해 #채찍 든 당원이 노동자 독촉해 사회주의 피라미드 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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