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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安을 모욕했다"…尹캠프서 흘러나온 단일화 '자성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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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열망을 담아내고자하는 제 진심은 상대에 의해 무참히 무너지고 짓밟혔습니다."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 결렬을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저희 당이 겪은 불행을 틈타 상중에 후보 사퇴설과 경기지사 대가 설을 퍼뜨리는 등 (국민의힘이) 정치 모리배 짓을 서슴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안 후보의 이날 기자회견 발언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고심 끝에 또 ‘철수’하려 하느냐는 비판과 조롱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 후보 단일화 제안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롱성 별칭인 ‘철수(撤收)’란 말을 스스로 언급하며 자신이 받은 상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안 후보의 단일화 결렬 선언이 단순히 조건이나 경선 방식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20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안 후보는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20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안 후보는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안철수 모욕했다" 국민의힘 내부 '자성론'

안 후보의 결렬 선언을 두고 21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측에서도 “안 후보를 모욕했다. 상대에 대한 국민의힘의 협상 태도가 잘못됐다”는 자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안 후보에 대한 존중, 배려가 없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으로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앞두고 국민의힘 내부에 양립한 이른바 ‘자강론’과 ‘통합론’이 치열하게 맞부딪쳤기 때문”(영남지역 중진 의원)이란 분석이 나온다. 자강론은 안 후보와의 연대나 단일화 없이도 윤 후보가 ‘다자구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8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당내 대표적 '자강론자'로 꼽힌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8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당내 대표적 '자강론자'로 꼽힌다. 연합뉴스

자강론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 이준석 대표다. 그는 안 후보가 여론조사 경선을 통한 단일화를 제안한 13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게 아니라, 역시나 했더니 역시나 한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데 이어, “애초 국민의당과 안 후보는 완주 의사가 부족하다”(14일), “진보진영에 있을 땐 계속 양보하더니 보수 쪽에 오셔서는 저희가 만만해 보이는가”(15일)라고 하는 등 안 후보에 대한 공세를 주도했다.

이 대표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 내부에선 “단일화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란 평가도 나왔지만, “이 대표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17일 정미경 최고위원)와 같은 경고성 메시지도 잇따랐다.

부닥친 '자강론' vs '통합론'

국민의힘에선 자강론과 함께 ‘통합론’도 비등하게 제기됐다. ‘확실한 승리’를 위한 안 후보와의 단일화는 필수라는 시각이다. 다만 통합론자들도 “시간을 끌면 안 후보가 먼저 양보할 것”이란 ‘지연파’와 “안 후보를 존중하며 조속한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는 ‘배려파’로 나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당내 인사들이 안 후보 측 인사들과 각각 물밑접촉에 나서 여러 단일화 논의 전선을 형성했다”고 복수의 당 관계자가 전했다.

윤 후보에 대한 이들의 보고도 “안 후보가 사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와,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안 후보를 존중해야 한다”로 각각 갈렸다고 한다. 캠프 사정을 잘 아는 야권 인사는 “단일화에 대한 당내 생각이 엇갈리는 가운데 선거운동 개시 이후 윤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완연해지며 안 후보의 일방 사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며 “후보 의중 역시 자연스레 목소리가 큰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교차로의 윤석열 후보 선거운동원 뒤로 보이는 안철수 후보 현수막.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교차로의 윤석열 후보 선거운동원 뒤로 보이는 안철수 후보 현수막.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까지 물밑에서 접촉한 분들은 후보의 공식 뜻을 받아 협의한 건 아니다. 각자 지인 만나서 서로 의사 타진 한 뒤 각자 ‘나 누구 만나서 어떤 얘기를 나눴어요’하고 일방 보고 한 것”이라며 “그러면 후보가 ‘그분들과 이런 얘기가 진행되고 있구나’란 감을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민의힘 내부에선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윤 후보가 직접 나서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 후보와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로 40년 지기인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밤이라도 후보님께서 안 후보님 댁으로 찾아가십시오. 삼고초려 하십시오”라고 썼다. 이어 “유세현장의 환호만으로, 몇% 우세한 여론조사만으로, 어퍼컷 동작만으로 (대선은) 안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윤 후보가) 더 간절하셔야 한다. 더 겸손하셔야 한다. 바짝 옆에 다가선 캠프 측근들의 말만 듣지 마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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