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에도 출석 문자서비스” 경찰 인권규정에 현장선 푸념

중앙일보

입력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공감 받는 수사로, 국민의 눈높이에 부응해 본래적 수사의 주체로 발돋움 한다.”

경찰청은 ‘경찰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 규칙’ 제정안을 지난 15일 입법예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제정안에 대해선 “수사 단계에서 준수해야 할 각종 인권보호의 원칙을 총망라한 독자적 규정”이라고 강조했다. 대외적 구속력이 있는 법규명령 형식의 행안부령으로 제정된다.

이번 제정안은 지난해 6월 발표된 인권경찰 구현을 위한 개혁 방안 중 하나다. 경찰의 지상 과제 중 하나인 인권 보호에 대해 일선 현장에서도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강력범죄 대처 등 수사 측면에서 “족쇄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부 나온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해 6월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인권경찰 구현을 위한 경찰 개혁 추진 방안 관련 대국민 보고회에서 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해 6월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인권경찰 구현을 위한 경찰 개혁 추진 방안 관련 대국민 보고회에서 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정 등 문자 전송…압수 ‘거부’ 의무적 고지

제정안이 시행되면 경찰은 피의자나 사건관계인에게 전화로 출석 조사를 요구할 경우 그 일정과 사건명 등을 문자메시지로 보내야 한다. 수사기관으로는 최초로 피의자 등의 임의제출물을 압수할 경우 상대방에게 압수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의무적으로 고지하도록 했다.

그간 지침으로 시행됐던 변호인의 전자기기 이용 메모 등도 명문화된다. 경찰에 자진해서 출석한 피의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긴급체포를 하지 않도록 했다.

사건 관련 문자메시지 전송, 메모 보장 등 제정안에 담긴 내용 일부는 현장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부분이다. 다만 구체적인 지침을 부령에 적시함으로써 절차를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강조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입구에 걸린 경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입구에 걸린 경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강력범죄 혐의자에게도 서비스” 볼멘소리

일선 현장의 경찰관들 사이에선 제정안에 담긴 내용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다수 나온다. 인권 보호 관점에서는 필요한 조치라는 취지다. 다만 인력 및 인프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권 보호와 신속 수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게 됐다는 부담도 있다고 한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경위는 “조사 인력 충원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와중에 구체적인 부령까지 제정하는 것은 ‘위’에서 현장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정책을 마련해 놓고선 부담은 현장에 더 지게 하고, 족쇄는 더 늘리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한 경사는 “농반진반 ‘흉악범이나 성폭력 등 강력범죄 혐의자에게도 서비스해 주게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강력팀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인권 보호도 중요하지만, 현장 경찰의 정당한 권리 행사가 보호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선의 어려움을 모르고 있지 않다. 부족한 부분은 개선할 것이다”며 “그렇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한다면 이번 제정안과 같은 제도·정책·법령 등의 수립은 반드시 필요하고, 현장도 이에 따라와 줘야 한다”고 했다.

경찰관 이미지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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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현장의 조화 이뤄야” 전문가 분석

전문가들은 원칙과 현장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책과 달리 수사는 책상에서 진행되는 게 아니다”며 “인권 보호라는 대원칙 아래에서 일선 현장 경찰관들이 느낄 수 있는 애로사항을 풀어줄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권에 무게 중심이 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선으로선 ‘지켜야할 게 많아졌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며 “규칙 제정 등에 있어서 현장의 의견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정책과 수사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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