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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최윤숙 칼럼 男子가 아름답다 ⑧] 너무 지친 당신! 푹 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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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누구나 ‘잠 좀 실컷 자 보았으면’하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잠은 게으름의 상징이요, 될 수 있으면 적게 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인 것 같다.

영화 <서편제>에 나오는 <이 산 저>이라는 노래를 듣다 보면 “어화, 세상 벗님네야, 인간이 모두가 100년을 산다 해도, 잠든 날과 병든 날과 근심걱정 다 제하면 단 40도 못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갓 쓰고 도포 입던 옛날에도 잠자는 시간은 제대로 살아있는 시간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시간이 곧 돈인 현대에 들어서는 어떤가? 졸음 방지제인 ‘타이밍’이라는 알약을 먹고 밤을 새워 일했던 여공들이 개발연대 수출신화의 주역으로 남아 있고, 하루 두세 시간밖에 자지 않고 세계를 누비는 비즈니스맨들의 무용담과 ‘4시간 자면 합격이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수험생의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관념을 완전히 바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잠은 시간을 낭비하는 게으름의 상징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의 건강, 그리고 미용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생산적 활동의 하나라는 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자는 동안에는 단순한 무의식 상태가 계속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의 잠은 그 깊이에 따라 1~4단계로 분류되며, 안구가 급속하게 회전하면서 꿈을 꾸는 렘(REM, Rapid Eye Movement) 수면 단계가 별도로 존재한다. 잠자는 과정은 얕은 잠인 1단계를 거쳐 2·3·4단계로 진행한 후 렘 수면 단계로 올라가는 데, 깨어나기 전까지 이 과정이 대여섯 번 반복된다고 한다.

1~4단계의 잠 상태에서는 주로 낮 동안 축적된 피로를 풀어 주고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데 비해, 렘 수면 상태에서는 뇌의 발달을 촉진하고 기억기능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기의 잠은 절반 정도가 렘 수면인 데 반해 성인은 20% 정도만이 렘 수면에 해당한다고 한다. 따라서 1~4단계의 잠을 많이 자는 성인은 감기에 걸릴 확률이 낮고, 렘 수면이 많은 아기는 나중에 머리 좋은 아동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잠 잘 자는 사람이 정력도 세다

특히 최근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잠이 용모 및 성기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남성의 경우 하루 성장호르몬의 3분의 2 이상이 1~4단계 수면상태에서 분비된다고 한다. 따라서 깊은 잠을 잘 자는 사람에게는 성장호르몬이 많은 데, 이 경우 우리 몸에서 흡수한 영양소를 신체의 사지 말단까지 골고루 분배해 몸이 균형 있게 발달한다. 하지만 잠이 부족해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영양분이 주로 내장 부위에 축적되면서 복부비만을 초래하고 노화도 빨리 찾아온다.

또한 잠을 잘 자면 먼지와 미생물의 침입 등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이 강화돼 여드름 같은 피부병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흔히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아울러 남성의 성기능을 좌우하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역시 잠자는 시간에 분비되는데, 처음 잠이 들 무렵 증가하기 시작해 렘 수면 첫 번째 단계에서 절정을 이룬 다음 깰 때까지 그 상태가 유지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남성의 성기능은 새벽녘에 가장 왕성한 상태가 되어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30분 정도의 발기상태가 몇 차례 반복된다.

결국 잠을 잘 자는 사람이 몸매와 피부도 좋고 정력도 세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이처럼 우리 몸에 중요한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특집으로 게재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여 본다.

첫째, 잠자는 시간은 하루 7~8시간 정도가 좋다. 잠자는 시간이 부족할 경우 판단력 저하, 정신 산만, 무모한 행동 등이 나타나게 된다. 한 실험 결과에 의하면 36시간 동안 잠을 못 잔 20대 성인은 60대 노인과 유사한 행동지표를 보인다고 한다. 미국 부시 대통령의 잦은 말 실수나 1989년 초대형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의 침몰사건,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등이 모두 잠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둘째, 잠자는 시간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라. 한 주에 쌓인 피로와 짧은 수면시간을 보충한다며 주말에 늦잠을 즐기는 것은 좋지 않다. 참고로 아침형 인간이 되면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겠지만 ‘달콤한 잠의 유혹’이라는 책의 저자 폴 마틴에 의하면 오히려 저녁형 인간이 스트레스도 적고 창의력도 풍부하며 인생에서 성공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셋째, 침실 분위기를 시원하고 어둡게, 그리고 어지럽지 않게 함으로써 잠을 자는 데 도움이 되는 환경을 유지하라.가리는 차양이나 귀마개도 도움이 된다.

넷째, 오후에는 콜라와 초콜릿을 포함한 카페인을 마시지 마라. 자극적 음식은 피하고, 저녁은 최소한 잠자기 3시간 전에 먹어라.

뜨거운 우유는 훌륭한 수면제다.그러나 알코올과 흡연은 좋지 않다.

여섯째, 잠자기 30분 전에는 컴퓨터나 TV를 보지 말고 논쟁도 하지 마라. 부드러운 음악이나 추리소설은 괜찮다. 그러나 소름끼치는 소설을 피하라.

일곱째, 잠자리에 들었는데 20분이 지나도록 잠이 오지 않으면 일어나라. 그리고 다른 방으로 가 조용한 활동을 하라.

우리는 인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면서 보내야 한다. 이 잠을 어떻게 자느냐가 우리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잠을 더 잘 잘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주식투자자들 사이에는 “쉬는 것도 투자”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우리 몸과 마음에도 잘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본다.

최윤숙·닥터최 바디라인 클리닉 원장 (www.blclin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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