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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그놈 9년→7년 감형…"내 딸 살려내" 상복 입은 母 오열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지검·춘천지법 청사 앞에서 숨진 성폭행 피해 여고생의 어머니와 강원여성연대 등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지검·춘천지법 청사 앞에서 숨진 성폭행 피해 여고생의 어머니와 강원여성연대 등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징역 9년→7년 감형…피고인은 ‘판결 불복’ 상고

“어린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주세요.”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효자동 춘천지방검찰청·춘천지방법원 앞. 상복을 입고 영정 액자를 든 한 여성이 “어떻게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나”라고 외쳤다. 그는 “내 딸을 살려 내, 내 딸을 살려 내”라고 말하며 오열했다. 이 여성은 2019년 6월 같은 고등학교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지난해 4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양(당시 18세)의 어머니다.

A양 어머니는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계속해서 딸에게 수치심과 고통, 상처를 줬다”며 “파렴치한 가해자 때문에 제 딸은 어린 나이에 제 곁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착한 딸이었는데 16살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며 “(딸을 생각하면) 가해자가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는 것도 솔직히 아깝다. 아까운 목숨을 잃은 제 딸과 법의 정의를 위해 가해자를 엄중하게 처벌해달라”고 촉구했다.

“꿈 많은 착한 딸”…사법부에 엄벌 촉구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지검·춘천지법 청사 앞에서 숨진 성폭행 피해 여고생의 어머니와 강원여성연대 등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지검·춘천지법 청사 앞에서 숨진 성폭행 피해 여고생의 어머니와 강원여성연대 등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성폭행 피해를 본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여고생 사건 가해자에 대한 형량이 징역 9년에서 7년으로 감형된 것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날 A양의 어머니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강원지역 여성단체들은 “사법부의 부당한 선고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라 말라”며 “재상고를 통해 합당한 죗값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하늘나라에 있는 피해자와 자식을 잃고 하루하루 처참한 삶을 살고 있는 피해자 가족에게 가해자는 단 한마디의 진심어린 사과도 없다”며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탄원서를 끊임없이 제출하고 있는 가해자에게 9년형이 과연 부당하였는지 묻고 싶다. 검찰은 피해자 중심의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A양의 어머니는 기자회견 뒤 재상고를 위해 ‘이 사건 범행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 관계가 있다’는 취지의 피해자 변호사 의견서와 A양이 남긴 유서 원본 등을 법원과 검찰에 제출했다.

"파렴치한 가해자가 죽음 몰고 가" 재상고 촉구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지검·춘천지법 청사 앞에서 숨진 성폭행 피해 여고생의 어머니와 강원여성연대 등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지검·춘천지법 청사 앞에서 숨진 성폭행 피해 여고생의 어머니와 강원여성연대 등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앞서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2부(견종철 부장판사)는 지난 9일 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치상죄로 기소된 B씨(21)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B씨는 고교 3학년이던 2019년 6월 28일 A양과 단둘이 술을 마신 뒤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A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B씨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외상 후 스트레스, 우울증 등으로 힘들어하던 A양은 2심 선고를 앞둔 지난해 4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양의 사망이 성폭행과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B씨의 형량을 9년으로 높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변론 종결 후 판결 선고 전 피해자가 사망한 사정을 양형에 반영하면서 피고인에게 방어 기회를 주지 않고 판결을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며 사건을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로 돌려보냈다.

이후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이 사건 범행과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고심 끝에 양형기준(5∼8년) 안에서 판단했다”고 밝혔다.

"2차 가해 살폈으면 이런 판결 못할 것"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지검·춘천지법 청사 앞에서 숨진 성폭행 피해 여고생의 어머니와 강원여성연대 등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지검·춘천지법 청사 앞에서 숨진 성폭행 피해 여고생의 어머니와 강원여성연대 등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여성단체들은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 2차 가해도 면밀히 들여다봤다면 법원에서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윤경 강원여성연대 상임대표는 “피해 여성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직접적인 가해는 물론, 그 이후에 일어나는 2차 가해”라며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2차 가해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또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그 원인을 추정·검증하는 심리부검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리부검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생전 남긴 글이나 지인과의 면담 자료를 수집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행적과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작업을 말한다.

한편 그동안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해 온 B씨는 징역 7년의 판결에 불복해 지난 15일 법원에 다시 상고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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