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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워치’로 신고했지만…신변보호 받던 여성 또 참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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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고 용의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숨진 용의자는 피해자에게 100m 이내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15일 서울 구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2분쯤 구로구의 한 야산에서 조모(56)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는 전날(14일) 오후 10시 12분쯤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대상 여성인 김모(46)씨를 살해하고 동석한 50대 남성 A씨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조씨가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 김씨는 사건 당시 경찰에서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신고했으며 동석한 A씨도 지인을 통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씨는 범행 직후 흉기를 들고 그대로 도주했으며 경찰은 신고 3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김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고, A씨는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중국동포인 것으로 조사됐다.

숨진 조씨는 경찰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인 긴급응급조치 1, 2호를 받은 지 이틀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1일 양천경찰서에 조씨를 폭행 및 특수협박 혐의로 고소했고, 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이 됐다. 고소 사실을 안 조씨가 김씨의 가게를 찾아가 소란을 피웠고 경찰은 조씨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지난 12일 경찰은 조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검찰에서 반려되자 긴급응급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조씨는 긴급응급조치 이후에도 김씨의 가게를 지속해서 찾아왔다고 한다. 인근 주민은 “최근 일주일 동안 조씨가 매일 김씨를 찾아왔고 말다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12일 이후 조씨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겼다는 신고는 접수된 게 없다”고 말했다. 조씨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반려한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신변 보호 대상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접근금지만 할 게 아니라, 보호 대상자를 지킬 수 있는 도구가 보완돼야 한다. 전자발찌처럼 스토킹 범죄자를 감시할 수 있는 도구를 도입하고 거처가 아닌 보호 대상자가 머무를 임시 보호처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할 경우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에 불과하다”며 “처벌 수위를 높이고 현장에서 대응하는 사법 경찰의 재량권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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