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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망령 부활" 일본열도가 법석/자위대 파병 파문 이모저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시민ㆍ학생 “다시 피흘릴 수 없다” 시위/「국방족」 강행에 법제장관 위헌해석
중동위기를 구실로 급기야 자위대 해외파병의 길을 열려고 하는 일본 정부ㆍ자민당의 이른바 「유엔평화협력법안」의 국회제출은 마냥 조용할 것만 같던 일본 정국을 소용돌이로 휘몰아 가고 있다.
헌법의 신해석을 내려서라도 자위대의 유엔군 참가까지 몰아붙이려는 자민당지도부,매파 국방족들의 기세가 등등한가 하면 한편으로 전쟁참가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자민당내 일부 원로의 신중론,헌법의 재해석은 있을 수 없다는 일부 법제국 간부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등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대 조짐이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우리의 어린아이들을 다시 전장에 보내 피를 흘리게 할 수 없다』는 운동이 가정주부ㆍ전쟁체험자ㆍ대학생들 사이에 번져가고 있으며 「자위대 해외파병 반대」를 외치는 반전구호가 적힌 벽보와 플래카드가 가두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태풍이 어느 방향으로 불어갈지,강도와 진로를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위대 해외파병문제는 전후 최대의 쟁점으로 등장,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가이후(해부) 총리가 자위대의 유엔군 참가와 관련,『집단적 자위권과 집단적 안전보장은 다르다』며 「집단적 안전보장」을 위한 파병이 가능하다는 헌법의 신해석을 내린데 대해 고토(공등) 법제국장관은 18일 국회토론에서 『무력행사를 인정하지 않는 헌법9조가 있는 이상 「집단적 안전보장」의 개념을 도입해도 무력행사가 따르는 자위대의 유엔참가는 불가능』하다는 유권적 해석을 제시,파문을 일으켰다.
이는 자위대 파병을 「집단적 안전보장」 행위로 규정지어 밀고나가려는 외무성등의 입장에 정면반기를 든 것으로 가이후 총리를 난처한 입장에 빠뜨렸다.
헌법해석을 둘러싸고 정부ㆍ자민당 내부에도 중대한 견해차이가 있음을 대표적으로 드러낸 예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오자와(소택) 간사장ㆍ니시오카(서강) 총무 등 자민당 간부는 『법제국이 그런 의견이라면 장관을 바꿀 수 밖에 없다』는 강경자세를 나타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고토다(후등전) 전 관방장관,미야자와(궁택) 전 외무장관 등 당내 원로그룹의 비판적 견해도 자민당 지도부간의 불협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면도칼의 별명을 갖고 있는 자민당의 강직정치인 고토다는 법안제출 과정에서 줄곧 신중한 자세를 견지,지난 11일 총무회석상에서 『다시 젊은이들에게 옛날 군국주의의 길을 걷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발언,자신의 전쟁체험을 바탕으로 자위대 파견에 반대입장을 펴 주목을 모았다.
미야자와 전 외무장관도 『어느새 이렇게까지 되었는가』고 유엔협력법안의 졸속에 이의를 달았다.
사회당등 야당의 거센 반발은 물론이고 자민당 안에서도 이처럼 반대의견이 나타나는 판이라 내달 10일까지로 예정된 임시국회 회기내에 법안 통과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자민당이 전체의석 5백12석중 과반수를 넘는 2백84석을 차지하고 있는 중의원에서는 통과가 가능하다고해도 참의원의 경우는 2백52석중 1백13석으로 절반에 훨씬 못미친다. 공명당이 계속 반대입장을 택하는 한 부결공산이 크다.
문제는 가이후의 정치적 입장이 안팎으로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는데서 법안부결의 경우 중의원 해산→내각총사퇴도 연내에 가능하다는 소리가 일찍부터 나오고 있다.
또 아시아 인접국들의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도 가이후 정권의 큰 짐이 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ㆍ필리핀ㆍ싱가포르,심지어 소련까지도 「유엔평화협력법안」의 추이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이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 매스컴을 통해 전해져 역으로 일본내의 「자위대 해외파병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언론에서 「국론분열」이라고 까지도 표현되는 자위대의 해외파병 파동은 꾸준히 군사대국의 길을 재촉해온 자민당내 매파그룹들에게는 「성년일본」을 위해 거쳐야할 「통과의례」로 생각되고 있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은 크다.<동경=방인철특파원>
▷헌법 제9조◁
【전쟁의 방기,군비 및 교전권의 부인】 ①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이 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이를 영구히 방기한다. ②전항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육해공군 그 외의 전력은 이를 보지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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