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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cm 늘렸는데, 엄청나요"…배추보이 이상호 이번엔 金 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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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베이징 겨울올림픽에는 쇼트트랙을 비롯한 빙상 경기만 열리는 게 아니다. '배추 보이'이상호(27·하이원)가 대한민국 설상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8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의 겐팅 스노파크 P&X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스노보드 알파인 평행대회전을 앞두고 금메달을 목표로 출사표를 던졌다. 4년 전 평창에서 은메달을 땄던 그의 두번째 올림픽 도전이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설상 첫 금 도전 #4년 전 평창올림픽서 은메달 따며 주목 #뒤늦게 보드 길이 189cm로 바꿔 적응 #"우승 확률 1%라도 높일 수 있다면…"

“훈련 중에 ‘꼭 금메달 따길 바란다’며 격려하는 팬을 종종 만났어요. 이런 한 분 한 분의 응원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몰라요. 선수들과 지원 스태프가 4개월 넘도록 집에도 못 가고 한마음으로 고생하는 것도 ‘설상 종목 첫 올림픽 금메달’을 보고 싶어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죠. 목표요? 두말할 것도 없이 금메달입니다. 어떻게 준비했는지는 올 시즌 월드컵 성적(종합랭킹 1위)으로 판단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베이징올림픽 현장으로 출국하기 직전 국내 훈련지(강원도 횡성 웰리힐리파크)에서 만난 스노보드 알파인 평행대회전 국가대표 이상호의 목소리는 똑 부러졌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오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4년 전 이맘때 평창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메달보다는 100%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말을 아끼던 수줍은 청년이 아니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이상호는 베이징올림픽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스노보드 알파인 금메달 후보 0순위다. 2021~22시즌 7차례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우승 한 차례(은2·동1)를 포함해 4번이나 포디움에 올랐다. 랭킹 포인트 434점으로 슈테판 바우마이스터(독일·406점), 드미트리 로지노프(러시아·326점)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전체 1위에 올랐다. AP통신은 올림픽 개막을 앞둔 지난 1일 한국 선수단을 소개하며 “전통적 강세 종목인 쇼트트랙 이외에 금메달이 유력한 선수는 이상호가 유일하다”고 보도했다.

4년 전 평창에서 준우승하며 그는 ‘배추 보이의 기적’ 주인공으로 주목 받았다. 아빠 손에 이끌려 고향인 강원도 정선의 고랭지 배추밭에서 처음 스노보드를 접한 어린 소년이 역경을 딛고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거듭난 스토리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은메달 획득 직후 태극기를 활짝 펼쳐 든 이상호. 오종택 기자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은메달 획득 직후 태극기를 활짝 펼쳐 든 이상호. 오종택 기자

이상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결승전에서 네빈 갈마리니(스위스)에 간발의 차(0.43초)로 패한 그 장면을 곱씹으며 더 큰 꿈을 꿨다. 은메달만으로도 이미 한국 설상 스포츠의 역사를 바꾼 쾌거였지만, 마지막 한 계단을 더 올라서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베이징올림픽 도전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어깨 탈구로 2019~20시즌을 일찍 마감하고 2020년 1월 수술대에 올랐다.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후 수술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부상 못지않게 심리적인 동요가 컸다. 반년 넘는 시간을 재활에 쏟아부은 끝에 2020~21시즌에 복귀했는데, 이번엔 코로나19 팬데믹에 발이 묶였다. 해외 전지훈련이나 국제 대회에 나서지 못하게 되면서 실전 감각을 되찾을 방법도 요원해졌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그는 평소 ‘곰’이라 불릴 정도로 무던하고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눈밭에 오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조바심이 났다. 이상호는 “조금씩 기량이 떨어지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거나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온다’고 매일 수십 번씩 되뇌며 버텼다”고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해 8월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사스페(스위스)로 건너가 전지훈련을 시작했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도전 과제와 맞닥뜨렸다. 이상호는 “외국 선수들과 오랜만에 재회해보니 많은 선수가 1m89cm짜리 플레이트(스노보드 본체)로 바꾼 상태였다. 이전까지는 1m85cm가 대세였다”면서 “국제대회 기문 간격이 이전보다 넓어지며 생긴 변화였다. (봉민호) 감독님과 상의해 1m89cm짜리 플레이트 적응을 시작했다. 우승 확률을 1%라도 높일 수 있다면 무조건 도전한다는 각오였다”고 말했다.

스노보드 본체가 4㎝ 길어지면

스노보드 본체가 4㎝ 길어지면

이상호는 “4cm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전에서 선수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엄청나다”면서 “플레이트가 길어지면 회전 반경이 커지고 속도가 더 붙는다. 한층 정교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봉민호 스노보드 알파인대표팀 감독은 “똑같은 코스라도 플레이트 길이에 따른 공략법이 다르다”면서 “(이)상호는 5~6개월 만에 달라진 기문 간격과 길어진 플레이트에 적응을 마쳤다. 통상적으로는 한 시즌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전문가들은 “베이징올림픽 코스의 경사가 평창에 비해 가파르지 않고, 까다로운 구간도 눈에 띄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봉 감독도 “평이한 코스에선 남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단 실수를 줄이는 게 메달 색을 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넘어야 할 적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이상호는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기온, 설질, 습도, 바람 등 다양한 요인이 승부에 영향을 미친다. 실수하지 않아도 언제든 0.01초차로 질 수 있는 종목”이라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금메달을 가져온다는 각오는 확고하지만, 경기 중엔 그런 목표마저 잊고 마음을 비우겠다”고 했다.

이상호는 경기 당일 아침식사에 앞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서 각오를 다진다. 집중력을 높이고 긴장을 낮추는 자신만의 루틴이다. 그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면서 “마음을 비우고 가장 이상호다운 방식으로 정상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한국 설상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상호. 우상조 기자

◇‘배추보이’ 이상호는…
출생 - 1995년 9월12일 강원도 정선
체격 - 1m80cm, 71㎏
종목 - 스노보드(알파인 평행대회전)
소속팀 - 하이원리조트
출신교 - 사북초-사북중-사북고-한국체대
주요 이력 - 평창올림픽 은메달(2018), 삿포로아시안게임 2관왕(2017)
세계랭킹 - 1위(2021~22시즌 월드컵 랭킹)
별명 - 배추보이(어린시절 정선 고랭지 배추밭에서 스노보드 배움)

'배추보이' 이상호 설상 첫 금메달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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