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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영장’ 후 무차별 사찰…통신조회도 ‘제어 장치’ 있어야

중앙일보

입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무차별 민간 사찰에 대한 ‘제어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수처가 중앙일보 편집국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까지 들여다본 정황이 드러나는 등 ‘사찰 논란’이 그칠 줄 모르면서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피의자의 통화내역 확보를 위해 이동통신사에 대한 통신영장을 발부받으며, 카카오톡 통신 영장을 별도로 받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한 명의 카카오톡 통신 영장만 받으면 다수의 통신 자료를 영장 없이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통신 영장을 법원이 지나치게 쉽게 발부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제기된다.

(과천=뉴스1) 허경 기자 =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이 5일 경기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2.1.5/뉴스1

(과천=뉴스1) 허경 기자 =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이 5일 경기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2.1.5/뉴스1

‘카톡 영장’ 뒤 광범위한 ‘통신 조회’

1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가 특정 인물에 대한 카카오톡 통신 영장을 받은 뒤, 이를 통해 확보한 대화방 참여자에 대해 광범위한 신원 정보를 조회하고 있다는 정황이 잇따라 드러났다.

공수처 수사과는 지난해 8월 4일 중앙일보 디지털 속보 취재 부서인 EYE팀 A기자가 업무용 카카오톡에만 쓰는 알뜰폰에 대해 통신자료(고객명,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 가입일)를 조회했다. 조회 사유는 “‘사건번호 2021년 공제 4호’에 대한 수사 목적”이다. ‘공제 4호’는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번호다. A기자는 지난해 5월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한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취재 등에 관여하지 않았다.

A기자는 업무용 알뜰폰으로 편집·보도 권한을 가진 간부와 법조 취재를 담당한 사회1팀 취재기자들을 포함해 70여 명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일상적인 취재·편집·보도 협의 등 의사소통을 했을 뿐이다. 이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수사와 관련 있는 접점은 이 단체 대화방이 유일하다.

이에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지난해 5월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보도한 본지 사회1팀 기자에 대해 지난해 8월 법원의 통신영장(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요청서)을 발부받아 이동통신사로부터 착·발신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확보하고, 별도로 카카오톡에서도 대화방 가입자 전화번호·ID를 포함해 통신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본다.

앞서 공수처가 사회1팀 기자의 어머니를 상대로 지난 8월 2일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이 담긴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이성윤 황제 에스코트 조사’를 보도한 TV조선 기자의 경우도 공수처는 해당 기자는 물론, 관련 취재와 관계없는 어머니, 동생, 친구에 대해 통신조회를 했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수사 관계없는 언론인 ‘카톡 영장’ 부적절”

의심되는 공수처의 수사 방식은 이렇다. 특정인을 찍어 이동통신사에 대한 통신 영장과 함께 카카오톡 통신 영장도 법원으로부터 발부 받는다. 카카오는 수사 기관이 특정 시기를 지정해 영장을 제시하면 영장 대상자가 속한 대화방에 참여한 이들의 전화번호와 로그 기록(날짜‧시간), IP(인터넷 주소) 정보를 제공한다.

공수처는 이렇게 대화방 참여자의 전화번호를 확보한 뒤 통신사의 통신자료(가입자 신원정보) 조회를 통해 그들의 인적 사항을 확인한다. 한 명에 대해서만 카카오톡 통신 영장을 받으면 개인톡방이나 단톡방으로 연결된 다수의 통신 자료를 영장없이 쉽게 얻을 수 있다. 로그 기록을 통해 언제 메시지를 올리고 얼마나 활동했는지도 볼 수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수처가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는 언론인에 대해서도 카카오톡 통신 영장 등을 발부받은 뒤 광범위한 통신자료를 조회하는 식으로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인권 수사기관을 자임하는 공수처가 이런 식으로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조회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수사 방식은 통신 자료 조회에 대한 ‘제동 장치’가 없기에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당사자의 통화·문자 일시, 착·발신 전화번호, 발신기지국 위치 등을 담고 있는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통신비밀보호법 적용을 받아 법원이 영장을 내줘야 한다. 반면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해지 일자가 포함된 ‘통신자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근거를 두고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임의 수사’로 확보할 수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서도 영장을 의무화해야 수사기관이 최소한으로 조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사자에게 조회 사실을 자동 고지하는 등 수사기관을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정보화 시대에 따라 통신 자료의 달라진 ‘위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0년 게재한 ‘통신자료 취득행위의 헌법적 검토’ 논문에서 “과거 통신자료의 의미는 크지 않은 면이 있었으나 거대한 정보 권력의 확장에서 통신자료 수집을 엄격하게 제어하는 것은 정보인권의 보장에서 불가결하다”며 “정보인권을 보장하려는 헌법적 규준은 국가와 기업 그리고 양자의 네트워크에 대해 최소한의 절차적 통제 장치로서 이용자 개인의 자기결정제도와 법원의 통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적었다.

법원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신 영장을 너무 쉽게 남발한다는 것이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공수처가 기자에게 소환 조사를 통보한 적도 없고,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임의로 제출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는데 법원이 기계적으로 통신 영장을 발부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공수처 통신조회 관련 강성국 법무부차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공수처 통신조회 관련 강성국 법무부차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인권위, “과도한 통신자료 제공 관행 개선돼야”

손쉬운 통신자료 조회는 비단 공수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공수처와 검·경 등 수사기관에 제공된 통신자료 건수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255만9439건에 이른다. 국정원 등 수사 기관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같은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럼에도 헌법재판소와 국회는 ‘뒷짐’만 지고 있다.

헌재는 지난 2016년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무단수집 피해자 500명을 모아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여전히 결정을 내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도 수사기관이 확보한 통신 자료를 삭제하는 기준을 마련하거나 국회의 사후 감독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된 적은 없다. 21대 국회에서도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이 사후 본인 통지를 강화하는 개정안을 냈지만, 이 역시 계류 중이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지난 6일 송두환 인권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최근 언론에 보도된 공수처 통신자료 제공 요청 사례뿐 아니라 검찰·경찰 등 모든 수사기관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과도한 통신자료 제공 관행은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및 통신 비밀 보장을 위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공수처는 오는 11일 김진욱 공수처장과 여운국 차장 등 소속 검사들이 참여하는 검사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한다. 이날 회의에서는 ‘사찰 논란’ 등 공수처를 둘러싼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김진욱 처장은 무분별한 통신 조회라는 비판에 “사찰이 아니다”라면서도 “조회 범위가 너무 넓지 않은지 성찰해 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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