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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대구 르포

"윤, 안철수와 단일화하면 이길 것" 60대 vs "윤석열로 되면 안 찍어" 3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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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새해 연휴였던 지난 2일 오전 대구 서문시장에는 평소보다 적은 시민이 찾아 한산했다. 대구=김성탁 기자

새해 연휴였던 지난 2일 오전 대구 서문시장에는 평소보다 적은 시민이 찾아 한산했다. 대구=김성탁 기자

“세 개 1000원짜리인데 이것도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산다카이. 여기는 집세가 월 100만원이니 어찌 맞춰가 사는데 시장 골목 안에는 250만원, 300만원이라 집세를 못 맞춰.”

 지난 2일 오전 대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서문시장에는 행인의 발길이 많지 않았다. 신년 연휴인 데다 첫 번째 일요일을 맞아 휴무하는 가게가 많았다. 하지만 시장 외곽 도로변에서 도넛 가게를 하는 장모(62)씨는 “서문시장도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 장씨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이준석이 좀 아이다 싶은데. 너무 자기주장이 강한 거 아니에요? 주변에서도 당 대표인데 윤석열 후보를 밀어줘야 할 거 아니냐고들 해요. 전부 힘을 실어도 될똥말똥한데 저리하니….” 장씨는 국민의힘 내분과 관련해 선대위에서 나온 이 대표의 책임이 크다는 쪽이었다. 동시에 윤 후보에 대한 불안함도 내비쳤다.

 “윤 후보가 말도 좀 잘 모하고 정치 경험도 별로 없고 그래가 부족한 면이 있어요. 부인 김건희씨 문제도 영 지장이 없진 않을 걸요? 찍어줄라카이 좀 부족하고 안 찍어줄라카이 정권 교체는 해야겠고. 대구·경북은 찍어줄 사람이 없으니 윤석열을 찍는 거예요.”

 대구·경북은 국민의힘의 텃밭이다. 중앙일보 의뢰로 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해 12월 30~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TK에서 65.1%로 가장 높았다.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45.5%)도 이 지역에서 가장 높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힘 합쳐도 될똥말똥한데 저리하나" 국민의힘 내분에 불만

"후보니까 이준석이 밀어줘야" vs "윤석열 배짱 부릴 땐가"

윤 후보 최근 지지율 하락에 정권 교체 안 될까 우려 목소리

단일화 관심 속 세대별 차이 "안 지지표 다 옮겨가긴 어려워"

 야권 심장부인 대구에서 만난 시민 중에는 최근 국민의힘 내분과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60세 이상 연령층이 특히 그랬다.

 “우리도 여론조사만 보는데, 대선에서 꼭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듭니더. 저번엔 자신감이 있던데 인자는 힘들겠던데 보니까예. 공약은 내놔도 믿을 수가 없긴 하지만 윤석열은 공약을 낸 게 별로 없더라고….” 택시기사 김모(66) 씨는 무조건 국민의힘을 찍겠다면서도 최근 흐름이 심상치 않다고 했다.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 상황이 하락의 주요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남구에 사는 김모(73)씨는 더불어민주당과 비교해 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이낙연·정세균도 민주당에선 뭉치는데 국민의힘은 사분오열돼 꼴 보기 싫다”며 “좋든 싫든 당에서 후보로 윤석열이 선출됐으면 이준석도 같이 가야지, 또 뛰쳐나오면 국민이 좋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혼란의 책임이 윤 후보에게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석열이 잘 몬하니까 그렇지만도 식구를 끌어안아야 하는데 말 안 들으면 놔둬뿌고…. 이준석도 선거해서 당수가 됐는데  나이 적다고 무시하면 되겠어요? 윤석열이 배짱부려서 될 게 아니고, 정치는 살살 꼬셔가지고 지지를 만들어야죠.” 시장에서 만난 김모(72·중구) 씨는 뭉쳐야 승산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리면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논의가 거론되는 데 대한 관심은 커 보였다. 고령층에선 윤 후보로의 단일화 선호가 높았지만, 안 후보로 돼야 한다거나 효과가 의문이라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시장 먹자골목에서 만난 이모(68·수성구)씨는 “안철수와 단일화해서 윤석열이 나가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며 “아무래도 안철수는 대통령감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야권이 단일화 없으면 도저히 될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반면 건어물 가게를 열고 손님을 기다리던 상인 이모(60)씨는 “단일화하면 좋겠다”면서 “나는 안철수가 더 좋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남구에서 시장을 찾은 70대 이모씨는 “안 후보가 실제 단일화를 할지도 불투명하지만, 윤 후보와 단일화한다고 해도 안 후보의 표가 많이 오겠느냐”며 “지지율이 10%라면 민주당으로 가는 표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일 오후 대구 최대 번화가 동성로에는 젊은 층을 비롯한 인파가 몰렸다. 대구=김성탁 기자

지난 2일 오후 대구 최대 번화가 동성로에는 젊은 층을 비롯한 인파가 몰렸다. 대구=김성탁 기자

 한산했던 시장과 달리 이날 오후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에는 젊은 층을 비롯해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보수 성향이 강한 대구에서도 대선과 관련해선 세대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백화점 인근 골목에 모여 대화를 나누던 대학생들은 지지 후보가 서로 달랐다. 수성구에 사는 신모(27) 씨는 “안 뽑을 사람은 정했는데 이재명 후보”라며 “윤석열 후보도 도긴개긴인데, 사람은 괜찮아 보이지만 따라붙은 사람들이 별로여서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재명에게 표를 주고 싶지 않아 윤석열에게 갔는데 마음에 안 들자 젊은 층이 안철수에게 옮겨가는 것”이라며 “만약 윤석열과의 단일화에서 안철수가 되면 찍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함께 있던 조모(24) 씨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하고 대선에 출마해 뭔가 성과가 많았던 것 같고, 맡으면 그래도 일을 할 것 같아 이재명을 뽑을 것”이라고 했다.

 쇼핑하러 동성로를 찾았다는 30대에서도 장년층과는 다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중구에서 사는 직장인 김모(33)씨는 “지지 정당을 정해놓고 그쪽에서 무슨 일을 하든 편들어주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며 “막판까지 공약과 정책을 보고 마음에 드는 후보를 정해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인 방모(33·중구)씨는 “대구가 보수 정당을 찍는 데 난 오히려 반대로 민주당을 찍어주는 편”이라며 “세종시에서 보듯 충청은 이쪽저쪽 번갈아 투표하니 크게 발전하는 반면 TK와 호남은 한쪽만 밀어주니 오히려 개발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후보는 검찰 쪽에만 능력이 있고 경제나 민생에선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아서 그래도 실무 경험이 있는 이재명 후보를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방씨는 “의혹이 많은 두 후보에 비해 안철수 후보는 깨끗한 편이라고 평가하기 때문에 안 후보로 단일화가 되면 이재명과 둘 중에 고민할 것”이라며 “단일화가 윤 후보로 되면 민주당을 찍을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메시지에 촉각 "반대하면 정권교체 못 해"

서문시장 주변 도로에 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구=김성탁 기자

서문시장 주변 도로에 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구=김성탁 기자

"저는 가만히 계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전에 어떤 입장을 발표할 것 같으냐는 물음에 서문시장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이렇게 답했다.
 대구는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다. 병원에서 치료 중인 박 전 대통령이 선거일을 앞두고 메시지를 낼 것인지, 낸다면 그 내용이 무엇일지가 정치권의 관심이다. 특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박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터라 여야 모두 파급 효과를 주시하는 분위기다.
 대구에서 만난 시민 대다수는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환영한다고 했다. 젊은 층 일부에서만 반발이 나왔다. 자영업을 하는 이모(38)씨는 “문 대통령 재임 중 가장 큰 잘못”이라며 “있는 사람들끼리, 정권 말기에 혜택을 주고받는 거 아니냐”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동성로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젊은 층은 모르지만 연세 드신 분들 중에는 지지자가 많아 뭔가 정치적 발언을 하면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택시기사 김모(66) 씨는 “사면을 환영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박 전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라며 “윤 후보가 수사했더라도 이미 지지하기 때문에 나에겐 별 영향이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메시지를 낼 경우에 대한 반응은 예민했다. 동대구역 앞에서 만난 김모(60) 씨는 “국민에 사과한다는 정도의 말은 할 것 같은데, 대선과 관련한 특별한 얘기는 안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그래도 윤 후보를 TK에서 지지하는데, 무슨 말을 해서 표가 떨어지면 안 된다. 윤 후보를 지지하면 그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모(70)씨는 “박 전 대통령이 밀어주면 무조건 올라가는데, 만약 윤 후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나오면 진짜 정권 교체는 못 한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