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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래세대에 나랏빚 떠넘길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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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홍상 전 APEC 기후센터 원장·KAIST 기술경영학부 강사

정홍상 전 APEC 기후센터 원장·KAIST 기술경영학부 강사

정치권에서 공약이 쏟아지면서 관련 예산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정부 지출을 더 늘리면 혜택받는 주체도 국민이지만 더 부담하는 주체도 국민이다. 혜택이 늘면 국민 부담도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국민 앞에 어떤 사업을 약속할 때면 동시에 그 돈은 어떻게 조달할지, 어떤 세금을 얼마나 인상할지를 아울러 밝힌다.

정부 지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밖에 없다. 세금을 더 걷거나, 사회복지 등 다른 지출 프로그램을 줄이거나, 아니면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재정적자가 구조적으로 고착된 상태이므로 정부 지출을 더 늘리면 고스란히 국가채무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국가채무는 언젠가는 누군가 세금을 더 부담해 갚아야 한다. 그때까지는 매년 이자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 결국 미래세대의 돈을 꾸어 쓰는 것이라 보면 된다.

국가채무 이미 OECD 평균 근접
정치인 공약, 재원조달 따져봐야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50%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0%보다는 낮으므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이런 단순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 국민의 체감 정도나 국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보려면 1인당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현재 5200만명에서 2070년에는 4000만명 내외로 감소한다. 빚을 안고 있는 한 가구의 사례로 따져보자. 가구원 수가 다섯 명에서 네 명으로 줄어들면 1인당 떠안는 부담은 4분의 1만큼 더 커지게 된다. 국민이 5000만명에서 4000만명으로 줄어들면 1인당 부담액은 4분의 1만큼 더 커진다.

또 다른 요소는 인구구조다. 국가 경제를 단순화하면 15~64세 인구가 생산 활동을 해서 나머지 15세 이하 유년 또는 65세 이상 노년 인구를 부양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채무도 결국 생산과 소득활동의 주체인 15~64세 생산 활동 인구가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OECD 회원국 중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진행되면서 생산 활동 인구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생산 활동 인구 한 사람이 몇 명의 유아와 노년 인구를 부양하는지가 총부양비율인데, 2020년 40% 언저리에서 2070년 110% 이상으로 뛴다. 생산 활동 인구 1인당 부담은 이 요인으로 인해 무려 56%가 더 늘어난다. 앞의 인구 감소 요인과 이러한 구조 요인을 고려하면 생산 활동 인구 1인당 국가채무는 단순 계산치보다 90% 이상 더 높아진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이미 OECD 평균 수준에 가까워진 상태다.

정부 지출은 한번 늘리면 줄이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국가채무는 가만둬도 점점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인구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생산은 위축돼 세금은 덜 걷히고 복지·의료 등 정부 지출은 늘어나 국가채무가 더 가파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영국·독일·일본의 경우 고령사회 진입 시점에서 최근까지 국가채무는 두 배 이상 늘었다. 우리에게는 북한 변수도 있다. 유사시 상당한 규모의 정부 지출이 불가피하다. 얼마가 필요할지도 불확실해서 기업의 우발채무 성격이다. 여유분을 완충용으로 남겨둬야 하는 이유다.

국민은 대선 후보들이 공약을 제시하면 그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지 묻고 답변을 요구해야 한다. 그 답에 현실성이 있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달콤한 선심성 사업은 입에 쓴 비용 청구서와 같이 놓고 판단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래 세대의 행복추구 능력을 우리가 얼마나 훼손하게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당장 우리 세대의 어려움을 덜자고 미래 세대에게 습관적으로 기대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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