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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10번 신들린 손놀림...방구석 10대도 열광한 이 엄빠놀이

중앙일보

입력

코로나19 시대에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빈티지 게임’이 있다. 바로 ‘클래식 테트리스’다. 지난 40년 동안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스테디셀러 게임으로 꼽히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주 수요층이었던 30년 이상의 ‘고수’들이 젊은 10대들에게 자리를 내주면서다. 클래식 테트리스의 ‘세대교체’다.

테트리스를 개발한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2009년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테트리스를 개발한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2009년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NYT)·가디언 등 외신은 클래식 테트리스로 세계 정상 자리에 오른 두 명의 10대 소년에 주목했다. 주인공은 미국 텍사스의 마이클 아르티아가(14)와 앤디 아르티아가(16)다. 형제지간인 이들은 지난해 11월 열린 12회 클래식 테트리스 월드 챔피언십(CTWC)에서 1등과 3등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나란히 1등, 2등을 차지한 데 이은 두 번째 챔피언 달성이다.

NYT에 따르면 클래식 테트리스 계에서 아르티아가 형제의 등장은 ‘세대교체’ 신호로 읽힌다. 그동안 테트리스는 수십 년 실력을 쌓아온 플레이어들의 전유물로 여겨왔다. 1984년 러시아 컴퓨터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개발한 원조 게임에 새 규칙이 추가되며 다양한 버전으로 진화했지만, 클래식 버전은 기본만 고수했다. 7가지 모양의 블록을 쌓아 횡으로 빈틈없이 만들어 부순다는 원칙이다. 화려한 이미지와 배경음악을 동반한 신세대 게임보다 밋밋하지만, 빠른 판단력과 정확한 조작으로만 승패를 가리는 게 매력이다. 이런 이유로 플레이어 상당수가 어릴 적 향수에 게임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CTWC 주최측에 따르면 최근에는 10대 젊은 층도 속도감과 리듬감에 매료돼 클래식 버전에 입문하고 있다. 이미 챔피언십 주 참가자의 연령대는 10대로 낮아졌다. 이들은 게임 속력을 높이는 신기술로 고수들을 위협하고 있다.

2020년 12월 동생 마이클 아르티아가(왼쪽)와 형 앤디가 클래식 테트리스 월드 챔피언십(CTWC) 결승전을 펼치고 있다. 이 게임에서 마이클이 형을 누르고 1등했다. [클래식 테트리스 유튜브 영상 캡처]

2020년 12월 동생 마이클 아르티아가(왼쪽)와 형 앤디가 클래식 테트리스 월드 챔피언십(CTWC) 결승전을 펼치고 있다. 이 게임에서 마이클이 형을 누르고 1등했다. [클래식 테트리스 유튜브 영상 캡처]

젊은층의 등장은 2018년 16세 소년 조셉 샐리와 함께 시작됐다. 샐리는 CTWC가 시작된 2010년 이래 세계 챔피언을 7번 차지했던 조나스 노이바우어(당시 39세)를 꺾은 CTWC 최초의 10대 세계 챔피언이다.

당시 샐리는 신기술 ‘하이퍼 태핑’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블럭의 방향을 바꿀 때 방향키를 초당 10번 이상 눌러 속도감을 유지하는 기술인데, 필요할 때만 방향키를 누르는 기존 방식과는 확연히 달랐다. 블럭의 모양과 위치를 빨리 바꾸다 보니 원하는 지점에 꽂을 확률을 높아졌고, 한 번에 많은 줄을 제거해 높은 점수를 얻었다. 10대 관중들이 샐리의 경기에 환호한 이유였다.

여기에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클래식 버전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 봉쇄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게임을 접할 기회가 늘어난 것이다. WP에 따르면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2월 열린 CTWC에는 27개국에서 200명의 진출자가 나왔는데, 10대들 활약이 눈에 띄었다. CTWC 창립자인 빈스 클레멘트는 “클래식 테트리스에서 구사할 수 있는 속도감, 리듬감이 10대의 눈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18년 제9회 클래식 테트리스 월드 챔피언십(CTWC) 결승전. 16세 소년 조셉 샐리(왼쪽)가 역대 최다 우승자인 조나스 뉴바우어를 꺾고 최초의 10대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클래식 테트리스 유튜브 영상 캡처]

2018년 제9회 클래식 테트리스 월드 챔피언십(CTWC) 결승전. 16세 소년 조셉 샐리(왼쪽)가 역대 최다 우승자인 조나스 뉴바우어를 꺾고 최초의 10대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클래식 테트리스 유튜브 영상 캡처]

아르티아가 형제들도 2018년 샐리의 게임을 보고 CTWC에 도전했다. 웹 개발자인 아버지가 사용하던 닌텐도 게임보이(1989년 발매)로 테트리스를 처음 접했지만, 이들을 테트리스에 빠지게 한 건 샐리였다. 일찌감치 배운 코딩도 테트리스에 관심을 높였다. 취미로 게임 배경음악과 캐릭터를 만드는 이 형제는 테트리스를 통해 개발자로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2연패의 주인공 마이클은 “다른 게임과 다르게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게 매력”이라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관찰하고 그들을 통해 배우고 직접 연습하는 게 성공의 열쇠”라고 말했다.

과거 클래식 테트리스 우승자였던 플레이어들은 앞으로 10대들이 새로운 기술을 더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CTWC 초창기 우승자인 해리 홍은 “현재 젊은 층의 기술은 우리가 경쟁할 수 없을 수준으로 높아졌다”며 “새로운 세대는 경쟁자들을 한계로 밀어붙이는 것을 즐긴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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